[경제사상사 여행] "과세는 납세자 재산 뺏는 행위"… 마르크스주의 대척점에 위치

입력 2013-04-12 15:49
(17) '무정부적 자유시장론' 개척자 머리 로스바드

폴란드 출신 화학자인 아버지와 러시아 출신 어머니의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미국 경제학자 머리 로스바드(Murray Rothbard). 그는 자연권 이론을 기초로 해 정부의 존재 자체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고, 시장경제만이 인류에 자유와 풍요, 평화를 보장하는 유일한 체제라는 주장을 편 대표적인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다. 자연권 이론은 인간 본성에서 자연의 법칙처럼 객관적이고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적 권리를 도출할 수 있다고 믿는 사상이다.

본래 인간이란 생존하고 번창하기 위해 생각하고 배우고 평가하며 자신의 목적과 수단을 선택하는, 즉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것이 로스바드의 설명이다. 따라서 그런 존재에게 중요한 것은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권리인데 이 자연권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존중해야 할 절대적 가치라는 것이다.

관심을 끄는 것은 로스바드의 시장관이다. 자유시장은 고유한 인성과 자연권을 구현한 것이기에 그 체제는 절대적이라고 한다. 자유시장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상생의 질서라는 게 그의 인식이다. 가격과 각종 제도에 힘입어 스스로 질서가 생기는데 시장경제가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이 로스바드의 생각이다. 진입 자유에 제한이 없는 자유경쟁은 상품 가격과 생산비용을 최소로 줄이고 품질은 최대로 개선할 수 있다는 점도 그의 중요한 경쟁옹호론이다.

자유시장의 작동 원리를 철두철미하게 신뢰했던 로스바드는 자유시장은 독점을 야기하기에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단호히 배격한다. 그의 반론의 핵심은 공급자가 하나이고 그래서 가격을 결정할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의 독점이라는 말은 적실성(的實性)이 없으며 독점가격과 경쟁가격을 구분할 그 어떤 기준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독점이란 자유로운 시장 진입이 금지된 상황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로스바드의 생각이다.

로스바드가 주목하는 대표적인 독점은 경찰·사법 서비스의 정부 독점이다. 정부 이외에는 누구도 경찰 같은 자기 방어 시설을 가질 수 없고 또 개인들은 회사를 설립해 이 같은 서비스를 공급할 수 없다. 사설재판소나 사설경찰 설립이 엄격히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입법부를 설치해 법도 독점적으로 생산한다. 통화 발행도 정부가 독점하고 있다.

로스바드는 정부의 그런 공권력 독점을 극도로 우려했다. 그것이 자유와 재산, 심지어 생명까지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모든 과세는 납세자의 재산을 빼앗는 행위라고 봤다. 세금을 통한 보조금은 비효율적인 사람을 위해 효율적인 사람을 처벌한다는 이유로 정부의 과세권 철회를 요구했다.

화폐 발행을 정부가 독점한 것도 문제다. 정부의 인위적인 금리조작으로 통화가 팽창하면 인플레이션과 경기변동이 필연적이라는 게 오스트리아학파에 입각한 로스바드의 설명이다. 1929년의 세계대공황도 정부의 통화팽창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통화정책이 몰고 오는 심각한 문제는 세계 경제를 불황 속에 빠뜨린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확인됐다. 그래서 그는 화폐 발행 독점권을 폐지하고 민간 차원의 금본위제도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치안과 경찰 비용이 상승하고 그 서비스의 품질도 열악하며 조세 부담만 늘어나는 이유도 경찰·사법 서비스의 정부 독점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법 생산의 독점도 문제다. 인·허가제, 보호무역, 보조금 제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시장 진입의 자유를 억제해 독점을 야기하는 법의 생산도 입법의 독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로스바드는 독점 문제의 해법을 자유시장에서 찾는다. 시장에 맡기면 재판을 담당하는 회사도 생겨나고 범인을 체포하거나 판결을 집행하는 등의 경찰 업무를 담당하는 경비회사도 생겨난다. 그런 회사들은 자유시장에서 경쟁적으로 사법·보호 서비스를 판매하고 시민들은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다. 법도 ‘재판회사’들의 자유경쟁을 통해 자생적으로 형성되고 그런 경쟁의 결과는 양질의 재판과 법의 형성으로 이어진다는 게 로스바드의 상상이다.

이쯤에서 보면 로스바드의 세계에는 정부는 사라지고 시장만 남는다. ‘무정부 자본주의’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문제가 없지 않다. 인성으로부터 객관적이고 시공을 초월한 도덕 원칙을 찾으려는 그의 자연법적 접근은 사회주의 ‘계획 사상’만큼이나 ‘치명적 자만’(하이에크)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정부가 없는 상황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소련 해체 직후의 러시아와 월남전 직후의 베트남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가 없으면 마피아 집단이 등장한다. 정부의 등장은 필연적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공공선택론자 홀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유의지’를 전제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자유의지는 신경과학이 보여주듯 존재하지도 않고, 독일의 경제학자 판베르크가 확인한 것처럼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그런 개인적 차원의 개념은 사회적 차원의 자유와 책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로스바드는 이런 비판의 여지를 남기긴 했지만 경제학 철학 역사학 윤리학 등 학제를 융합, 오스트리아학파 내 한 분파의 사상을 심화·확대해 정부에 대한 자유시장의 절대적 우월성을 잘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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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해결 이론 아닌 세상을 보는틀 구성

로스바드 사상의 힘

머리 로스바드는 특정 문제 해결에 필요한 이론 개발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틀을 구성하려는 야심찬 학자였다. 그를 ‘시스템 빌더’라고 부르는 이유다. 경제사상사에서 그런 칭호로 불리는 인물은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존 스튜어트 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루트비히 폰 미제스 등 극소수다.

로스바드는 마르크스주의의 대척점에 서 있다. 국가에 완전히 의존하는 마르크스주의의 대안으로 전적으로 시장에 의존하는 ‘무정부 자본주의론’을 제시했다. 마르크스는 사회 경제 현상을 바라보는 인상적이고 통일된 사고의 틀을 제공했지만, 노동가치론부터 공황이론에 이르기까지 옳은 점이 하나도 없다는 게 로스바드의 평가다.

로스바드는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원시인들의 삶을 동경한 낭만주의 시대의 희생자가 바로 마르크스라고 지적한다. 그런 사상은 유토피아적인 데 반해 자신의 무정부주의 사상은 현실적인 인성을 바탕으로 하기에 결코 유토피아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적실성이 있는 인성을 적극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비판적 합리주의자 포퍼의 주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로스바드는 교육 제도, 사회보장 등의 정부 독점은 비효율성과 낭비를 초래하고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자유 시장에 맡길 것을 주장하는 점에서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의 작은 정부론과 일치한다. 흥미로운 것은 1929년 대공황과 관련된 로스바드와 프리드먼의 대격돌이다. 프리드먼은 1963년 저서 《미국의 금융사》에서 1920년대 연방은행은 적절한 행동을 취했지만 1929~1932년에는 통화감축이라는 부적절한 행동으로 경제를 파괴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로스바드는 같은 해에 펴낸 《미국의 대공황》에서 1920년대 내내 통화팽창으로 대공황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고 진단하고 디플레이션 정책은 잘못된 투자를 정리하는 데 유익했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로스바드와 작은 정부론 사이의 가장 큰 긴장은 정부의 강제력 행사와 관련된 부분이다. 작은 정부론은 엄격한 규칙을 통해서 국가의 자의적인 강제력 행사를 막으려고 한다. 그러나 로스바드는 그 같은 해법을 반대한다.

모든 정부에는 규칙을 위반해 정부 권력이 무제한이 되는 내재적 경향이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사법적 독점과 조세 권력이 주어지는 한, 정부 권력을 제한해 개인의 자유와 생명, 그리고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이 로스바드의 설명이다.

민경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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