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소위 ‘납품단가 협의권’은 이론적 근거도 없을뿐더러 현실에서 결코 작동하지도 않을 탁상공론의 포퓰리즘 입법에 불과하다. 사적 계약의 자유를 심대하게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경쟁 아닌 담합을 조장하는 반시장적 입법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도급법을 개정해 중소기업의 품목별 조합에 가격조정 협의권을 주겠다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골자다. 기존의 납품단가 조정신청권을 협의권으로 강화해 대기업이 의무적으로 조정에 응하도록 함으로써 실효성을 담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는 어떻게 설계를 하건 현실에서는 작동이 불가능하다. 2011년 7월 신청권이 발효된 이후 실제 행사된 것은 그해 8월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골판지 제조 A사가 골판지협동조합을 통해 납품단가를 조정해달라는 것이었는데 그 상대도 우리가 상상하는 재벌 대기업이 아닌 OO공제회였다. 정부는 지금의 조정신청권이 실효성이 없었던 것은 법적 강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시장의 생리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특정 품목에 대한 조정신청이 제출되는 순간 납품업자, 단가 등의 계약정보는 모두 공개되고 만다. 경쟁업체가 치고 들어올 기회만 제공하는 것이다. 이게 시장이다. 조정협의권으로 강화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물론 품목별 조합들이 이런 위험까지 다 봉쇄하겠다면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조합들이 아예 내밀한 협정가격을 고시하고 처음부터 단체 수의계약을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카르텔이요, 담합이다. 갑을 관계를 넘어 시장질서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다. 공정위가 이런 행위까지 용납한다면 그건 직무유기다. 이 제도가 중소기업에 도움이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가격협의권을 빌미로 납품기업들이 세력화한다면 대기업들은 아예 서플라이 체인 자체를 전환하게 된다. 그때는 누구를 대상으로 가격협상을 벌여야 하나.
우리가 계약의 자유와 시장경쟁 체제를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성실한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가장 공정한 거래질서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신중한 접근을 요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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