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시인', 詩의 해방을 꿈꾸다…구광렬 씨 새 시집 '슬프다…'

입력 2013-04-07 16:42
수정 2013-04-08 05:16
한국과 남미를 오가며 한국어와 스페인어로 작품 활동을 해온 구광렬 시인(울산대 교수·사진)이 다섯 번째 한국어 시집 《슬프다 할 뻔했다》(문학과지성사)를 발표했다. 스물다섯 살 때 홀연히 멕시코로 떠난 그는 그곳의 인디오 마을에서 목동이 돼 시를 썼고 멕시코 국립대에서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다. 다섯 권의 스페인어 시집을 내고 멕시코문학협회 특별상, 브라질 문학예술인연합회 문학상 등 굵직한 상을 받은 이름있는 시인이다.

시인에게 언어란 세계의 모든 것이 아닐까. 서로 다른 두 언어를 오가는 건 완연히 다른 세상을 오가려는 시도다. 그래선지 그의 시에서는 어떤 틀의 안과 밖에 동시에 놓인 시인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연구실에서 면도를 하다,/하나밖에 없는 거울을 떨어뜨린다//그중 큰 조각을 들어서 본다/얼굴의 일부가 거울 밖에 놓인다/(…)/거울 밖 왼쪽 눈이 70년,/광교 낙지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일 때/거울 안 오른쪽 눈은 80년,/멕시코시티 소나 로사 한국정에서 냉면을 먹는다’(‘間 41’ 부분)

그는 시인의 말에서 “시는, 글이라는 새장 속에 갇힌 새인지 모른다. 새장을 열어 그 새를 풀어주고 싶지만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새장의 크기를 늘리는 쪽을 택했다”고 했다. 서로 다른 세계를 넘나드는 초월 앞에서의 좌절 때문이다.

‘궁금한 것이다, 하늘은 왜 파랄까/가 아니라, 고양이의 야옹 소리 앞에/생략된 소리./(…)/덜 빠져나온 야옹 전의 야옹들./그러니,/낮의 야옹과 저녁 야옹 사이,/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던/겁나게 많은 야옹야옹들.’(‘문득,’ 부분)

“결백증, 자폐증, 강박증이 있던 P는 ‘산다’를 살았다 또는 살 것이라 했다 산다고 발음하는 순간 산 것은 과거 일이 되고 또 살 것은 미래 일이 될 것이니 말로써는 그 ‘산다’를 따라잡을 수 없는 일이라 했다//그런 그가 어느 날 ‘산다’라는 쪽지를 남겼다: ‘시간은 거대한 단세포동물이다 우린 그를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한다 머리인 미래와 꼬리인 과거를 동시에 만지려면 우리의 팔은 그만큼 길어야 한다’”(‘間 36’ 부분)

‘테킬라Tequila’는 누군가 시를 왜 ‘노래한다’고 표현하는지 물을 때 들려주면 답이 될 듯싶다. 남미의 정취를 그대로 옮겨 온 노래다.

‘오늘은 악기별로 취하고 싶은 밤,/바이올린은 소 혓바닥 요리와 함께하는 쿠바쿠바/콘트라베이스는 엄지와 인지 사이 소금 덩어리와 테킬라/비올라는 양고기 바비큐에 풀케 한 사발!/딴다다 따다딴-테킬라-’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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