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포드 "5%가 아닌 95%를 위한 車"

입력 2013-04-05 17:19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기업의 존재 이유는 ‘값 싼 상품’과 ‘높은 임금’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데 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의 기업 경영철학은 뚜렷했다. “5%가 아닌 95%의 사람들을 위한 물건을 만들겠다”며 대중적인 차를 만들었고, ‘1일 8시간 근무, 일당 5달러(당시 동종업계 임금의 2배)’를 정착시켜 미국 중산층 확대에 기여했다.

포드는 1863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계에 관심이 많았던 어린 포드는 닥치는 대로 분해와 조립을 반복해 집안에 남아나는 시계가 없었을 정도였다. 15세 때 기계공으로 취업, 36세 때에는 에디슨이 세운 일루미네이팅사의 기술책임자가 됐다.

1903년 자본금 10만달러로 포드사를 설립했다. “멀쩡한 말들이 많은데 쟁기질도 못하는 자동차가 팔리겠나”라는 비아냥 속에 내놓은 승용차 ‘모델 T’가 히트를 쳤다. 당시 가장 싼 자동차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내놓은 850달러짜리 포드 승용차는 1911년 3만대, 1913년 10만대가 팔렸다.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부터는 차값이 400달러까지 떨어졌다.

대공황 이후 시련이 닥쳤다. 노동조합에 대한 거부감이 컸던 포드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후계자였던 아들의 죽음으로 80세에 경영에 복귀했지만 2년 만에 은퇴했다. 수십년이 지난 뒤 기업인의 롤모델로 평가받게 되지만, 당시에는 ‘비인간적인 노동착취 경영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속앓이를 했다. 그런 탓인지 은퇴 2년 만에 뇌출혈로 눈을 감았다. 1947년 4월7일이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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