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스토리 - 예술가의 사랑 (45)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대는 처음에 여자로 태어났으나 / 자연의 여신이 그대를 만들다 사랑에 빠져 / 남성을 덧붙임으로써 내게서 그대를 앗아갔네. (‘소네트 20’)
17세기 초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소네트(14행시)를 읽은 영국의 독자들은 경악했다. 이것은 분명 여성이 아닌 남자에게 바친 시였기 때문이다. 낮 뜨거운 표현으로 가득한 연시였다. “빌어먹을, 그토록 아름다운 드라마를 창작한 셰익스피어가 동성애자라니.” 사람들은 시집을 읽다 말고 내팽개쳐버렸다. 그들이 구입한 시집은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상업적으로 성공하자 한몫 챙기려던 출판업자가 1609년 허락도 없이 엮어낸 시집이었다. 모두 152편이 수록된 이 시집 중 126편은 남성에게, 26편은 ‘어둠의 여인(Dark Lady)’이라는 유부녀에게 바친 것이었다. 출판업자의 기대와는 다르게 시집은 독자의 분노만 잔뜩 불러일으킨 채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지고 말았다.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뜬 지 24년 후 존 벤슨이라는 또 다른 출판업자가 예전의 시집을 다시 출간했다. 아름다운 표현들로 가득한 이 시집이 사장되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품성도 충분해보였다. 책을 팔기 위해 벤슨은 꼼수를 부렸다. 소네트의 남성대명사를 몽땅 여성대명사로 바꿔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바친 시로 둔갑시킨 것이다. 유부녀이긴 하지만 남성에게 바친 시보다는 도덕적인 부담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꼼수는 통했다. 시집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명성이 예전보다 높아진 점도 한몫했다. 이렇게 해서 이 ‘조작된’ 시집은 이후 140여년간이나 셰익스피어의 진본으로 행세했다.
오리지널본이 다시 등장한 것은 1780년 에드먼드 말론에 의해서였다. 셰익스피어를 국보라며 자랑스러워하던 영국인들은 망연자실했다. 출판업자이자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조지 스티븐스는 ‘소네트20’의 내용을 보고 “한 남자에게 바친 이 역겨운 찬사를 혐오감과 분노의 감정 없이는 읽기 어렵다”며 치를 떨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시를 옹호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19세기 초의 한 비평가는 낭만주의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셰익스피어를 유아성애자로 몰아간 데 분개, 셰익스피어의 사랑은 순수하며 그의 시에서는 어떠한 도덕적 흠집도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옹호자들은 셰익스피어가 남성에게 바친 사랑은 동성애가 아니라 남성 간의 정신적 사랑으로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만 이런 셰익스피어 옹호론은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의 시에는 정신적 사랑으로 보기에는 낯 뜨거운 내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이 여성의 쾌락을 위해 그대를 만들었나니, 그대의 사랑은 나의 기쁨이요, 그대의 성적 에너지는 여성의 기쁨이라네(소네트20)”라는 표현을 과연 정신적 사랑의 은유로 해석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런 뜨거운 사랑의 고백을 받은 젊은 남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인물은 셰익스피어의 후원자였던 서덤턴 백작과 펨브로크 백작이었다. 두 사람 모두 셰익스피어 생존 당시 한창 젊었고 한결같이 빼어난 미남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결정적 증거는 없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으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는 1889년 셰익스피어가 사랑한 연인이 누구인지 가늠하는 짤막한 글을 발표했다. 그는 주인공이 셰익스피어가 운영하던 극단에서 여성역을 전담하던 미소년인 윌 휴즈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와일드는 자신의 추론이 맞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고 그의 주장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그의 대작 ‘율리시즈’의 등장인물을 통해 와일드의 주장을 탁월한 추론이라며 치켜세웠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동성애자였을까. 아니다. 그는 18세 때 8살 연상의 앤 해서웨이와 결혼, 3명의 자녀를 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소네트 중 26편을 닥 레이디라는 유부녀에게 바치지 않았는가. 또 그는 많은 하류계층의 여인들과 하루가 멀다하고 사랑을 나눴음이 기록으로 입증된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다양한 로맨스는 그가 연애의 고수였음을 입증한다. 그는 양성애자였던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성은 뒷전인 채 그가 동성애자였느니 양성애자였느니 입방아를 찧는 것은 호사가들이나 일삼는 경박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성적 정체성을 정립하는 것이야말로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랑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결정적 열쇠가 아닐까. 셰익스피어에 대한 독자의 사랑이 계속되는 한 그에 대한 쑥덕공론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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