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버릇 못 버린 '왕년 대도'…75세 좀도둑 전락

입력 2013-04-04 16:49
수정 2013-04-05 02:54
강남빌라 털다 현장서 체포
종교인 변신도 잠시…10여년새 4번째 월담


1970~80년대 초 부유층과 사회지도층 집에서 고가의 금품을 털고, 그 중 일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해 ‘대도(大盜)’, ‘현대판 홍길동’으로까지 불렸던 조세형 씨(75·사진). 출소 후 도벽을 끊고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던 그였지만, 4일 오전 서울 서초경찰서 형사계 사무실에서 점퍼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양손에 수갑을 찬 채 쭈그리고 앉은 모습은 영락없는 ‘좀도둑’이자 ‘잡범’이었다.

조씨는 전날인 3일 오후 8시30분 서울 서초동의 한 고급 빌라 1층에 몰래 들어가 롤렉스 시계와 보석 등 3000만원 어치의 귀금속을 훔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는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로 창문을 뜯고 들어갔다가 30여분 만인 오후 9시5분 이웃집 창문이 깨져 있는 것을 본 주민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그는 훔친 물건을 가방에 담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에게 만년필을 휘두르며 저항하다 경찰이 총을 겨누며 “움직이면 쏜다“고 말하자 순순히 체포에 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씨가 ‘대도’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 당시 조씨의 절도 행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한 고위층 저택의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서민들의 울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1982년 11월 검거됐지만, 이듬해 2차 공판 도중 법원 구치감 창문을 뜯고 탈주한 뒤 115시간 만에 검거돼 청송교도소에서 15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출소 후 그는 한동안 독실한 종교생활을 하며 새로운 삶을 찾는 듯했다. 출소 이듬해엔 사설 경비업체에 취직해 ‘범죄예방 전문위원’으로 활동했고, 2000년 5월엔 결혼도 했다. 하지만 조씨의 ‘변신’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0년 11월 신앙간증을 하러 일본을 방문했다가 대낮에 도쿄의 한 주택가에서 절도 행각을 벌이다 현지 경찰에 붙잡혀 3년6개월간 복역했다. 귀국 이후에도 2005년 3월 주택에 침입해 절도를 하다 붙잡혔고, 2009년 4월에는 경기 부천시에서 금은방을 털다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최근 한 선교단체로부터 매달 100만~150만원씩의 활동비를 받는 등 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서울 논현동에 임대 사무실을 얻어 선교활동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조씨는 경찰에서 “지인에게 3000만원을 사기당하고 사무실 임대료를 마련할 수가 없어 다시 도둑질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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