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수 국제부장 may@hankyung.com
남의 돈을 빌려 쓰는 것이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문턱 높은 은행 돈을 쓰든, 고금리의 사채를 쓰든 마찬가지다. 어렵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데다 돈을 빌리고 나면 채권·채무관계 때문에 이자도 내야 하고, 이런저런 간섭도 받는다. 빌려 쓴 돈으로 자동차를 사고 집도 사지만, 하루라도 빨리 빚을 갚아야 한다는 중압감에 마음은 편치 않다. 독일어로 ‘죄(schuld)’와 ‘부채(schulden)’는 어원이 같다고 한다.
적절한 빚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다. 미래의 꿈을 앞당겨 실현시켜 주고, 빚을 갚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든다. 경제를 성장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그러나 과도한 빚은 필연적으로 거품경제를 형성한다. 빚을 빚으로 돌려막아야 하는 ‘외발자전거 경제’가 되면 디폴트(채무불이행)는 시간문제다.
BIS·S&P의 거품경제 경고
뉴욕증시가 사상 최고치 행진을 하는 요즘 ‘거품경제’에 대한 경고가 지구촌 곳곳에서 들린다. 스위스 바젤에 본부를 둔 각국 중앙은행 간 협력기구인 국제결제은행(BIS)은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잇따른 양적완화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무제한 금융완화정책(아베노믹스)을 비판했다. “각국 정부의 부채비율이 이미 높은 상황에서 양적완화로 인해 국가의 빚을 계속 늘린다면, 경기 회복보다는 자산 거품만 만들어낼 것”이라는 분기보고서를 지난달 17일 내놓았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의 국가부채가 30조달러가량 늘었다는 통계도 제시했다.
아베노믹스의 선봉장이 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신임 총재는 ‘고백’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 지난달 28일 일본 참의원(상원)에서 “일본의 국가부채는 매우 높은 수준이며, 이 상태는 비정상적이고 지속가능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일본 국가부채는 총 983조2950억엔(2012년 9월 말 현재)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23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고 수준이다. 1970년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국토 균형발전’부터 시작된 대대적인 토건사업과 고령자 연금지급 부담 등으로 적자재정을 거듭한 결과다. 구로다 총재의 발언은 일본판 대중영합 정치 ‘사무라이 포퓰리즘’에 대한 경고다.
고령화·저출산 위험 대비해야
한국은 어떤가. 국가부채가 468조6000억원으로 GDP의 37.9%(2012년 말 기획재정부 발표)다. 일본에 비해 훨씬 낮지만, 국제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달 20일 발표한 ‘세계적인 고령화 2013:새로운 도전’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암울하다. 보고서는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2040년 136%로 올라가고, 2050년에는 313%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사회보장 지출이 급증하면서 2050년 노령인구 부양비율이 61%(14~64세 노동가능인구 100명이 65세 이상 노령인구 61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뜻)로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재정부는 지난달 29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2.3%로 낮췄다. 올해 세수가 12조원 부족할 것 같다며 추가경정예산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각종 공약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135조원 이외에 또 다른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증가요인이 생긴 셈이다. 가뜩이나 959조4000억원에 이르는 가계부채가 경제에 큰 짐이 되고 있는 터다. 공약도 공약이지만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한국이 ‘부채공화국’이 될 것이며 신용등급이 투기등급까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는 S&P의 경고에 귀를 열어야 할 때다.
최명수 국제부장 m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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