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투잡세계
이 대리, 결혼식 카메라맨 활약…주말에 2~3건 뛰면 용돈 '짭짤'
월급보다 더 두둑
온라인쇼핑몰 차렸더니 월급 두 배 재미 '쏠쏠'
직장 때려쳐? 행복한 고민
그만두고 싶지만
사장님 아들 비밀과외 거절 못하고 봉사한다 생각
은근슬쩍 편애모드 "괜찮네"
식품회사 홍보팀에 근무하는 임 대리의 스케줄은 ‘주중’과 ‘주말’로 나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일과시간까지는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맨 채 책상에서 열심히 일하는 일반 직장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불금(불타는 금요일 저녁)’ 이후 일요일까지 그의 삶은 180도로 바뀐다. 주말에 그는 이태원의 클럽 DJ로 변신한다.
대학 시절부터 이 방면에서 활약했던 그는 지금도 이태원은 물론 강남이나 홍대 클럽 등에서 러브콜이 들어오는 꽤 이름난 DJ다. 부수입도 짭짤하다. “얼마 전 결혼을 했는데 DJ 활동으로 번 부수입으로 비자금을 만들고 있어요. 돈도 벌고 즐겁게 일하며 스트레스도 날리고, 일석이조죠.”
경제 사정이 빡빡해지면서 ‘투잡(two job)’을 생각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최근 한 취업포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9명 이상이 ‘투잡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투잡에 얽힌 김과장, 이대리들의 애환을 들여다봤다.
◆“사례비는 현금으로 주세요”
중견기업 총무팀에 근무하는 박 대리는 사내 사진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다. 학창 시절부터 사진을 취미로 삼은 지 10년이 넘었다. 사내에서도 사진을 가장 잘 찍는 사람으로 통한다.
박 대리는 이런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해 행사장 전문 카메라맨으로 용돈 벌이를 하고 있다. 같은 팀 선배의 돌잔치에 부탁을 받아 사진을 찍어준 대가로 5만원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재미를 붙인 박 대리는 지인의 결혼식이나 돌잔치 등에 촬영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물론 공짜는 없다. 이제는 입소문을 타 매 주말 카메라를 들고 뛴다. “요즘 같은 결혼식 성수기엔 주말마다 두세 탕씩 일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사례비는 무조건 현금입니다. 그래야 회사에 걸릴 염려가 없죠.”
◆커피숍 사장님으로 가명 인생 10년
투잡을 원하는 직장인들은 많지만 투잡 사실을 회사에 알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실제로 투잡 직장인 10명 중 7명은 동료에게도 비밀로 한다. 직무태만이라는 평가와 함께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해서다.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김 과장도 회사에선 아무도 모르게 투잡을 뛰고 있다. 그의 제2의 일터는 10년 전 창업한 커피숍이다. 명의는 부인 이름으로 했지만 실제 운영은 자신이 하고 있다. 커피숍의 ‘밤사장’인 셈이다. 커피숍 사장 명함엔 당연히 가명을 쓴다. “얼마 전 카페 홍보를 위해 블로그와 트위터 등을 개설했는데 여기에도 모두 가명을 썼어요. 제 진짜 이름보다 가명이 더 친숙하게 느껴질 때는 묘한 기분이 듭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섬유업체 마케팅팀에 근무하는 김 과장은 지난해부터 스타킹 수출 역군도 맡고 있다. 글로벌 경매사이트인 이베이를 통해 스타킹을 판매하고 있는 것. 우연히 이베이 마케팅 서적을 접한 후로 제품 특성상 가볍고 포장하기도 쉬운 스타킹을 택해 부업을 하고 있다. 남대문 시장에서 물건을 떼다가 직접 팔기도 하고, 도매상과 친해지면서 지금은 직접 디자인을 주문하기도 한다. 요새는 스마트폰을 쓰게 되면서 24시간 영업이 가능해졌다. “부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제 회사 월급보다도 많은 50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어요. 사내 커플인 남편도 끌어들여 사업을 키울 생각입니다.”
출판사에 다니는 정 과장은 동생과 함께 인터넷을 통해 단체 맞춤복을 팔고 있다. 맞춤복 주문업체에 근무하다가 독립한 동생을 이것저것 도와준 게 어느새 부업으로 확대됐다.
동대문 등에서 도매로 의류를 사들인 후 인터넷 등을 통해 주문 판매를 한다. 단체 맞춤복은 야외행사가 많은 5월과 9월에 집중적으로 매출이 일어나는 게 특징. 이 때문에 1년에 두 달만 바짝 고생하고 쏠쏠한 비상금을 챙길 수 있다.
주문 접수나 발송 등은 동생이 맡아서 하고, 정 과장은 본인의 출판 경험을 통해 쌓은 포토샵과 편집 실력을 통해 사이트와 제품 사진을 꾸미는 일로 역할 분담을 한다. “의외로 주문이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의류에 무늬를 염색하는 나염 기계를 들여놔 직접 디자인을 해볼까 고민 중입니다.”
◆투잡도 투잡 나름
직장인들에게 모든 투잡이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살다 온 황 대리의 책상 서랍에는 비밀의 책들이 쌓여 있다. 다름 아닌 일본어 회화 문제집. 그는 퇴근 시간 이후에 틈틈이 이 책들을 훑어본다. 저녁에 과외 선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받는 과외비는 약간의 수고비조로 무료봉사에 가깝다. 과외를 받는 학생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 사장의 고교생 아들이다. 사장은 아들을 일본에 있는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황 대리를 과외 선생님으로 남몰래 고용한 것. 황 대리는 속이 터지지만 사장님의 부탁이라 어쩔 수 없이 1주일에 한 번 무료 봉사를 하고 있다. “물론 회사생활이 든든하고 편안해지는 것은 있죠. 이런 보이지 않는 편애(?) 덕분에 아직까지는 과외선생 역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학창시절 리포트를 아직도…
대기업 마케팅팀에 다니는 이모 신입사원은 동기들보다 월수입이 20만원가량 많다. 그 원천은 학창시절 리포트다. 졸업학점이 4.0이 넘는 ‘모범생’이었던 그는 모든 수업의 과제나 리포트를 남들보다 늘 알차게 작성해 A학점을 받곤 했는데, 이를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활용하고 있다.
유료 리포트 공유 사이트에 한 건에 1000~5000원씩 받고 파는데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매달 꾸준하게 찾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 리포트 주제를 보고 ‘OO학교 선배님 아니냐’고 묻거나 ‘OOO교수님 OO수업 들으시는 분, 제가 먼저 받았으니 받지 말라’는 후기를 남긴 사람들을 보면 웃음이 난다고. “교수님들, 앞으로도 쭉 같은 과목으로 가르치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먹고 살아요!”
강경민/고경봉/정소람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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