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물가 개편에 건설업계 '날벼락'…公共공사 대금 수천억 못받게 돼

입력 2013-03-31 17:15
수정 2013-04-01 02:44
새 지수로는 상승률 3% 안돼

韓銀 "어쩔 수 없다"


“불가피하게 발생한 선의의 피해다. 어쩔 수 없다.”(한국은행)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다.”(기획재정부)

31일 건설업계와 정부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지난 1월 5년 만에 단행한 생산자물가지수 정례 개편이 가뜩이나 부동산 경기 침체로 빈사 지경에 내몰린 건설업계에 또 하나의 시름을 안겨주고 있다. 새로 바뀐 지수 산정 방식이 관급공사를 하는 건설업체들에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연간 수천억원의 기회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건설업계가 생산자물가지수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배경에는 정부 공공입찰 제도와 가격 정정 방식, 한은의 물가지수 개편 같은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재정부는 ‘정부 입찰계약 집행 기준’을 통해 정부 공사를 맡은 민간 건설업체에 추가로 공사비를 지급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계약 시점을 기준으로 물가상승률이 3%를 웃돌 경우 전체 공사금액의 3%를 추가로 준다는 것이 핵심이다. 인건비와 자재비 등 원가 상승 요인을 공사비에 반영해주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이번에 기준 연도가 2005년에서 2010년으로 개편돼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과거 지수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야기됐다.

과거 기준대로라면 계약 기간 중에 이미 물가상승률이 3%를 넘어서 공사대금의 3%를 추가로 받을 수 있었던 업체들이 신지수 도입 이후 줄줄이 기준선 밖으로 밀려난 것. 최상근 대한건설협회 계약제도실장은 “건설경기 불황으로 대형 건설사조차 영업이익률 1~2%에 목을 매는 판에 3%의 기회 손실은 중소업체에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우려했다.

실제 한국경제신문이 2011년 9월 계약 시점으로 경기도, 영남 지역의 3개 건설업체 공사현장에 대한 물가상승률을 계산해본 결과 신지수가 구지수에 비해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말 현재 구지수 기준으로 A공사장의 물가상승률은 3.34%, B공사장은 3.00%, C공사장은 3.12%였다. 3개사 모두 기준선을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 바뀐 지수를 대입하면 이들 현장의 물가상승률은 각각 2.74%, 2.47%, 2.27%에 그쳐 돈을 받을 수 없다. 현장마다 물가상승률이 다른 이유는 인건비 비중과 자재 투입 내용에 따라 가중치를 달리 적용하기 때문이다.

업계는 올 들어 이 같은 기회 손실 금액이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재정부 "미처 예상 못해…구제 가능할 지 미지수"

지난해 정부 발주 공사 수주액은 34조원. 이 가운데 피해를 입은 공사현장이 5%만 돼도 업체들이 받지 못한 대금은 2500억원이 넘는다.

이번에 유독 이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한은이 생산자물가지수를 개편하면서 5년 전에 비해 지수 산정 가중치가 높은 공산품 품목을 대거 교체했기 때문이다. 경운기 유선전화기 피아노 등 80개 품목을 빼고 애완동물사료 체력단련장비 등 102개 품목을 새로 넣었다.

이 과정에서 가격 하락 속도가 빠른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제품이 대거 들어간 것이 결과적으로 물가상승률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한은 측 설명이다.

예를 들어 2011월 8월~2012년 11월 사이의 공산품 생산자물가를 계산해보면 구지수 기준으로 물가는 0.96% 떨어진다.

반면 신지수 기준으로는 2.90%나 하락한다. 생산자물가에서 공산품 지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3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2%포인트의 격차는 전체 물가지수를 최소 0.5%포인트 이상 떨어뜨린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경제 현실에 맞게 물가지수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재정부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김대은 재정부 국가계약과 사무관은 “보다 객관적인 공사금액 산정을 위해 한은의 생산자물가지수를 적용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할 줄 몰랐다”며 “과거 지수 적용이 가능한지 검토해 보겠지만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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