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명품 팔리고 부동산 '꿈틀'…빚·무역적자는 '눈덩이'

입력 2013-03-22 16:49
수정 2013-03-22 23:10
글로벌 이슈 따라잡기 - 일본 아베노믹스, 특효약인가 마약인가…3개월 성적표

닛케이225 40% 뛰고 경제성장률 3분기만에 반등
국가부채 GDP의 200%…무역수지 8개월 연속 적자
"물가상승률 2% 불가능"…"기대 크지만 성과 없을것"…일본 안팎서 비판론 커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틴 펠드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 최근 아사히신문이 그에게 물었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무제한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확대 정책)’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대답은 간결, 명확했다. “아베 총리는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아베 정권이 오는 26일로 출범 3개월을 맞는다. 극우 이미지와 달리 그가 취임 후 집중한 분야는 정치가 아닌 경제였다. ‘중앙은행의 윤전기를 쌩쌩 돌려서라도 돈을 풀겠다’는 선전포고로 시작된 아베노믹스는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혈색 좋아진 일본 경제

지금까지의 성적표는 화려하다. 달러당 70엔대였던 엔화가치는 90엔대 중후반까지 급락했고, 주가는 금융위기를 촉발한 2008년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다. 국민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약 70%인 지지율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나라 안팎엔 여전히 우려 섞인 시선이 적지 않다. 가뜩이나 쇠약해진 일본 경제에 아베노믹스가 결정타를 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정 악화와 무역적자 확대 등이 대표적인 걱정거리다. 아베 총리의 거대한 경제 실험은 지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아베노믹스는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 물가를 높이고, 엔화가치 하락을 유도하는 정책이다. 아베 총리는 취임 직후 ‘물가상승률 2% 목표’라는 깃발을 내걸었다. 소비를 자극, 부진한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목표한 만큼 물가가 오를 때까지 무제한의 금융완화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20조엔이 넘는 추가경정예산도 편성했다. 신임 경제관료들은 한목소리로 아베노믹스를 지지했다. 외환시장에서 금기시되는 환율 목표치까지도 관료들의 입을 통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엔고(高)’를 ‘엔저(低)’로 돌려세워 일본 수출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높여주겠다는 취지다.

외환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려는 수요가 급증했다. 때마침 살아난 미국 경기도 엔화가치 하락을 부추긴 요인이다. 엔저는 수출 기업의 실적 개선 기대감을 높였고, 이는 곧바로 주식시장에 반영됐다. 일본 증시의 바로미터인 닛케이225지수는 아베 정권 출범 3개월 동안 40% 가까이 뛰었다. 경제성장률도 반등 조짐이다. 일본의 작년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연율(전기 대비 분기별 증가율을 1년치로 환산한 것) 기준으로 0.2% 늘어나 3분기 만에 성장세로 돌아섰다.

실물 경제에도 온기가 도는 분위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사이타마현의 메르세데스벤츠 대리점에서 올 들어 1500만엔(약 1억7200만원)짜리 고성능 스포츠카가 잇따라 팔리고, 도쿄 긴자의 백화점에서 고급시계 판매가 급증하는 등 부유층을 중심으로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동산시장도 들썩인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최근 발표한 올 1월1일 기준 전국 평균 공시지가는 전년 동기 대비 1.8% 떨어졌지만 하락 폭은 전년(2.6%)보다 0.8%포인트 줄었다. 땅값이 오른 곳도 조사 대상 2만6000여개 중 2008곳으로 전년(546곳)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땅값이 바닥을 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해석했다.

○아베노믹스 한계론 대두

이런 가시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베노믹스가 ‘위험한 실험’이라는 지적은 여전하다. 일본 내부에서 비판론을 제기하는 대표적 인물은 지난 19일 퇴임한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다. 그는 퇴임 기자회견에서 “금융완화 조치로 물가상승률 목표치인 2%를 달성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시라카와 전 총재는 이어 “지난 5년간의 재임기간 동안 10차례 이상 금융완화 조치를 단행했지만 물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며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일본 내수시장에서 갑작스러운 수요 증가를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진단했다. 일본은 거품기였던 1990년대에도 물가상승률이 1% 정도에 그쳤다.

로버트 새뮤얼슨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는 “일본의 경기부양책은 마약 효과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실질적인 문제점을 치유하지 못한 채 국민의 기대감만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는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20조엔가량을 쏟아붓고, 일본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통화량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아베 정권의 부양책은 지금껏 역대 일본 정부가 추진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며 “이번에도 이전과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 의도대로 인플레이션이 돼도 걱정이다. 펠드스타인 교수는 “일본 경제에 잠재돼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금리 상승”이라며 “통화량 증가와 물가 상승은 결국 장기금리의 상승을 초래해 일본의 재정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리가 올라 국채 이자 지급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본의 국가부채 비율은 이미 GDP 대비 200%를 넘어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엔화가치 하락으로 액화천연가스(LNG) 등 화력발전용 연료 수입액이 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일본은 지난달에도 무역수지(수출-수입)에서 7000억엔 이상의 적자를 냈다. 작년 7월 이후 8개월 연속 적자 행진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심리를 냉각시킬 우려도 크다. 현재 일본 내 10개 전력회사 가운데 6개가 전기요금을 올릴 예정이다.

스티브 킹 영국 HSBC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물에 젖은 폭죽’이라는 표현으로 아베노믹스의 한계를 지적했다. 빵 터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지만 실제로는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그는 “영국에서도 3~4년 전 일본처럼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경제 성장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만 초래해 오히려 성장이 둔화됐다”고 설명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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