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5번째 구제금융국
예금자 돈에서 일부 떼내 은행 손실 메우기로 합의
지중해 동부 작은 섬나라 키프로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00억유로(약 14조4000억원)의 구제금융을 받는다. 16일(현지시간)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은행 부실로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키프로스 정부와 이같이 합의했다. 키프로스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에 이어 유로존 구제기금을 받는 다섯 번째 국가가 됐다.
그런데 구제금융 조건이 특이하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키프로스의 모든 은행 예금계좌에서 일정 비율(10만유로 이상은 예금의 9.9%, 그 이하는 6.75%)의 돈을 떼 은행 손실을 메워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예금자는 부담금을 내는 만큼 해당 은행의 주식을 보상으로 받는다. 과거 다른 구제금융 사례와 비교해 전례가 없는 내용이다.
키프로스의 부도 위기와 독특한 구제금융 조건은 특유의 경제 구조에서 비롯됐다. 2011년 말 기준 은행의 예금과 대출 등 전체 자산은 키프로스 국내총생산(GDP)의 8.3배가 넘는다. 10%에 불과한 법인세율과 느슨한 금융 규제로 조세피난처로 알려지면서 유럽 각지의 자금이 몰려들면서 금융 영역이 팽창한 결과다.
비대해진 금융은 인접한 그리스의 2010년 재정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GDP의 1.6배에 이르는 대(對) 그리스 은행 대출이 고스란히 부실화됐다.
BBC는 “다른 나라처럼 공공자산 매각과 증세를 통해 해결하기에는 국가 경제 대비 은행 부문 손실이 지나치게 많아 민간 예금자에게 손을 벌리게 됐다”고 전했다.
키프로스가 러시아계 자금의 ‘돈세탁’에 이용되고 있다는 점도 예금자 부담금 부과 이유가 됐다. 2011년 키프로스에는 1197억달러의 자금이 러시아에서 들어왔으며 1299억달러가 러시아로 빠져나갔다. 키프로스 GDP인 247억달러의 5배 규모다.
국제 자금 투명성 감시기구인 글로벌파이낸셜인테그리티의 레이먼드 베이커 이사는 “러시아 불법자금이 키프로스에서 합법적인 자금으로 둔갑해 다시 러시아로 흘러들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키프로스 정부는 이 같은 유로존과의 합의안을 18일까지 의회에서 처리하고 19일 발효시킨다는 계획이다. 예금자들은 정부 청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예금자의 발길이 몰리면서 그나마 문을 열었던 은행들도 서둘러 영업을 끝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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