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교황은 누구?…탱고·축구 좋아하고 버스로 출퇴근하는 '청빈 수도사'

입력 2013-03-14 17:23
수정 2013-03-14 23:38
동성애·낙태엔 단호
카톨릭 2000년 사상 첫 아메리카 대륙 출신
20세에 예수교 입문…평생 빈자들 위해 헌신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76)이 13일(현지시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비유럽권에서 교황이 선출된 것은 시리아 출신인 그레고리오 3세(731년) 이후 1282년 만에 처음이다. 아메리카대륙에서는 가톨릭 교회 2000년 사상 첫 교황이 나왔다.

교황은 성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나와 광장을 메운 10만여명의 신도들에게 이탈리아어로 “좋은 저녁입니다”라고 말문을 연 뒤 “여러분의 환영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스페인어가 섞인 라틴어로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콘클라베는 로마에 주교를 앉히는 것이며, 동료 추기경들이 나를 찾기 위해 다른 세상의 끝으로 간 듯하다”고 농담을 던졌다. 새 교황은 14일 시스티나 성당에서 교황으로서 첫 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공식 즉위 미사는 오는 19일 열린다.

○청빈하고 겸손한 빈자들의 아버지

새 교황은 교황 즉위명으로 프란치스코를 선택했다. 여기에 지금까지 삶과 앞으로의 행보가 담겨 있다는 게 가톨릭 교회 내 평가다. 13세기 성자 프란치스코(1182~1226)는 이탈리아 중부 아시시의 부유한 상인가정에서 태어나 방탕한 생활을 하다 20세에 모든 재산을 버리고 청빈을 목표로 한 ‘작은 형제들의 모임’이라는 수도회를 세웠다. 평생을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만년인 1224년 자신의 몸에 성흔(聖痕·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옆구리와 손발에 생긴 다섯 군데 상처)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신임 교황 프란치스코는 1936년 12월17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 가정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공립학교에 다니며 화학 기술자를 꿈꿨지만 스물두 살 때 예수회에 입문해 수도사의 길을 걸었다. 산미겔 산호세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신학생을 대상으로 철학과 문학을 가르쳤다.

1969년 사제서품을 받은 그는 30대 시절 수도사로서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아 1970년대 후반까지 아르헨티나 지방을 돌며 사목활동을 했다. 서른여섯 살이던 1980년에는 산미겔 예수회 수도원 원장으로 발탁됐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에 올랐고, 2001년 추기경에 임명됐다.

교황은 추기경이 된 이후 한 번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화려한 추기경 관저에 들어가 지낸 적이 없다. 시내 중심가 작은 아파트에 거주하며 직접 음식을 해먹고 옷도 수선해서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운전기사를 따로 두지 않고 출퇴근 때는 시내 버스를 주로 이용한다. 빈민촌을 자주 찾아 신도들과 만나고 교리 논쟁보다는 사회적 봉사가 교회의 주요 임무라고 강조하는 등 ‘행동하는 성직자’로 알려져 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작가를 좋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어 매일 오전 4시30분에 일어난다. 분주한 사교적 삶을 즐기지는 않지만 탱고와 축구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 문제엔 진보적

교황은 교리적으로 교황청 공식 입장에 충실한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다. 동성애, 낙태, 피임, 안락사 등에 대해 ‘죽음의 문화’라고 부르며 매우 비판적이다. 하지만 질병을 막기 위한 피임기구 사용에는 찬성한다. 동성결혼은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들의 권리는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미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아르헨티나 가톨릭 교회의 현대화를 이끈 개혁적 인물로 꼽히는 이유다.

교황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적잖은 마찰을 빚었다. 정부가 동성결혼·낙태수술 허용, 피임기구 무료 배포 정책을 편 탓이다.

쿠데타와 군부독재가 이어졌던 1970~1980년대 교황의 행보에 대해선 비판도 나온다. 교황은 당시 예수회를 이끌면서 “비(非)정치화를 견지하라”는 지침을 내렸으며 남미 좌파 성향의 해방신학과는 거리를 뒀다. 교황은 작년 10월 아르헨티나주교단 공동성명을 통해 독재체제에 소극적이었던 교회의 과오를 인정했다.

교황의 추기경 시절 공식 전기작가였던 세르지오 루빈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교황이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신학자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노(no)’지만 신자유주의와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해 비판적이고 빈자와 함께하는 성직자냐고 묻는다면 답은 ‘예스(yes)’다”고 말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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