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에 대한 법정구속 관행 생긴 것 아니다
평생법관제 등으로 전관예우 문제 없애야
양승태 대법원장은 13일 “재벌에 대한 법정구속 관행이 생겼다는 부분은 수긍하기 어렵다”며 “법 앞에 평등이라는 관념에 따라 사안별로 판단할 뿐”이라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재벌에 대한 엄중한 판결이 계속될 것인가’라는 한 패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경영공백 우려나 기업인이 과거 경제 발전에 기여한 점만을 들어 관대한 처벌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재벌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중처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화 SK 등 그룹 총수에 대해 ‘징역4년형+법정구속’이라는 패키지 판결을 쏟아내면서 법원이 새 정부에 코드를 맞추려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토론자들은 판사들의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가는 양형기준의 문제점도 거론했다. 양 대법원장은 “양형기준이 불변의 원칙은 아니다”며 “사회가 변함에 따라 양형 감각도 함께 변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는 이어 “양형기준은 지속적으로 정착된 여론을 반영해야 한다. 판결이 일시적인 여론을 따라가다가는 사회 기준 자체가 모호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양형기준과 양형위원회가 있는 곳은 우리나라 외에 영국과 미국밖에 없다고 소개했다.
토론회에선 ‘로펌(법무법인)이 전관예우의 새로운 피난처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퇴임 전 근무했던 법원·검찰 관할 사건을 퇴임 후 1년간 수임하지 못하도록 한 개정 변호사법(일명 전관예우금지법)상 제약을 로펌에 들어가 교묘히 피하고 있다는 것. 양 대법원장은 “전관예우는 법원으로서는 ‘원죄’ ‘족쇄’로 곤혹스럽다”며 일단 문제점을 시인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관이 생기지 않는 것”이라며 “평생법관제와 법조일원화가 전관예우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관의 보수를 올리는 등 처우 개선책도 아울러 제시했다.
예비시험제 도입 등 대한변호사협회 등에서 주장하는 로스쿨 제도 변경과 관련, 양 대법원장은 일단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시행 초기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해서 과거로 회귀할 수 없다”면서도 “향후 시행 경과를 보아 다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도에 본질적인 수정을 하거나 다른 제도로 변경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양 대법원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법관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선 “법관은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다. 외관상으로도 공정해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법부의 존립 근거인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최근 ‘막말 판사’ 사건에 관해 그는 “법정 언행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그런 일이 발생해 통탄을 금할 수 없다”며 “다만 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너무 큰 것이 한 가지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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