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포클랜드

입력 2013-03-12 17:16
수정 2013-03-12 21:34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포클랜드(Falkland)는 아르헨티나에서 동쪽으로 630km 떨어진 제도다. 크기는 전라남도와 비슷하다. 주민은 2110명으로 주로 목양업에 종사한다. 물론 대부분 영국계다. 이 섬의 최초 발견자에 대한 영국과 아르헨티나 주장이 엇갈린다. 아르헨티나에선 스페인 선원들로 이뤄진 마젤란 탐험대가 최초로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영국에선 16세기 말 영국의 항해사 존 데이비스가 첫발을 디뎠다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양쪽 모두 문서로 확인된 기록은 없다.

1690년 영국의 해군 장교였던 포클랜드 자작이 이 제도에 상륙한 뒤 영국령임을 공표했다. 섬의 명칭도 자신의 이름을 따 지었다. 아르헨티나에선 이 섬을 말비나스(Malvinas)라고 부른다. 말비나스는 1764년 이 섬의 첫 정착민이었던 프랑스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아르헨티나는 10년 뒤인 1826년 포클랜드의 영유권이 아르헨티나에 귀속된다고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1833년 영국은 전함을 보내 포클랜드 제도를 점유하고 아르헨티나계 주민들을 퇴거시킨 뒤 1000명 이상의 영국인을 이주시켰다. 그 뒤 영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해왔지만 아르헨티나는 150년간 끈질기게 포클랜드 반환을 요구했다.

마침내 아르헨티나가 1982년 4월 포클랜드 공격을 감행하면서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 전쟁이 벌어졌다. 아르헨티나는 영국이 협상을 요구하거나 강력히 항의하는 선에서 사태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 총리인 마거릿 대처는 달랐다. 그는 즉각적인 전쟁에 돌입함으로써 전쟁에서 전광석화의 승리를 거뒀다.
당시 전쟁에 참여한 찰스 황태자에게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비장한 어투로 “영국을 위해 죽어라”라고 한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영국은 74일간의 전쟁에서 이겼고 섬을 다시 점령했다. 해묵은 갈등이 재연된 것은 600억배럴에 달하는 유전이 발견된 2010년 부터다. 이후 아르헨티나는 유엔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해왔다. 심지어 포클랜드 해역에서 유전 개발 활동을 벌이는 영국 회사들에겐 제소 가능성도 경고하고 있다.

사정이 복잡하게 돌아가면서 이 지역 자치정부가 영유권을 결정하는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10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이번 투표는 물론 결과가 뻔하다. 아르헨티나는 이번 주민 투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두고 있다. 하지만 영국이 계속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이상 아르헨티나로서는 별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이다. 포클랜드에 깃들어있는 대처의 정신을 누구도 쉽게 꺾을 수 없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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