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예진 산업부 기자 ace@hankyung.com
‘자동차 구매 후 3년 안에 사고가 났을 때 새 차로 바꿔주는 신차 교환권과 엔진오일 및 필터 3회 무상 교환권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단 신차 교환은 본인 과실 50% 이하의 차대차(車對車) 사고로 파손 금액이 사고 보험금 지급내역서 기준으로 차값의 30% 이상이어야 한다.’
한국GM이 지난 7일 내놓은 신차 교환 프로그램이다. 회사 측은 엔진오일 교환 서비스 대신 새 차로 바꿔주는 ‘파격적’ 조건이라고 내세웠다. 3000만원짜리 중형차를 구입한 사람이 900만원 이상 수리비가 나오는 사고를 당하면 새 차를 받게 된다. 기껏해야 10만원 안팎인 엔진 오일을 세 번 공짜로 넣는 것보다 이득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과연 그럴까. 보험개발원에 의뢰해 최근 1년 동안 차량 구입 후 3년 내 발생한 승용차 차대차 사고를 분석한 결과 전체 사고 건수 32만7566건 중 자차 수리비 1000만원을 초과한 경우는 1.2%였다. 여기에 본인 과실 요건을 추가하면 확률은 더 낮아진다. 새 차일수록 조심 운전하기 때문에 수리비 500만원 이하의 경미한 사고가 95.9%로 대부분이었다.
혹시 모를 사고로 큰 돈의 수리비를 지출하는 것보다 낫다는 설명에도 ‘함정’이 있다. 사고차량을 완전히 수리한 뒤 반납해야 신차로 바꿔준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서다. 새 차를 팔아 차익을 남기지 않는 한, 사고차를 고쳐 탈 때와 부담하는 비용은 똑같다는 결론이 나온다.
소비자가 신차 교환권이라는 ‘미끼’를 물면 자동차 회사는 엔진오일과 필터 교환비용을 아끼게 된다. 수리한 차는 보험사에 넘겨 보상을 받고, 신차 판매도 늘릴 수 있는 ‘꿩 먹고 알 먹기식’이다. 수입차 업체들도 이미 같은 조건으로 비슷한 프로그램을 내놨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박사의 ‘전망이론’에 따르면 소비자는 이익을 취할 때 기쁨보다 같은 비율의 손실이 발생했을 때 받는 고통이 두 배 정도 크다. 본능적으로 이익을 얻기보다 손실을 피하려는 욕구가 강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자동차 회사들은 새 차가 파손될 위험을 꺼리는 소비자의 마음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모양새다. 고객 만족을 추구한다면 적어도 자사 제품을 구매해준 소비자를 비합리적인 선택자로 만들어선 안된다.
전예진 산업부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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