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석 <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 >
지난 9일 일본 민영방송인 아사히TV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출연했다. ‘헌법 개정’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튀어나왔다. “국제적인 집단 안전보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남겨 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은 빙 둘러갔지만 내용은 분명했다. 논란을 빚고 있는 ‘헌법 제9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것. 헌법 9조는 ‘교전권’을 사실상 금지하는 규정이다. 일본이 제2차 대전에서 패전한 뒤 새로 만든 헌법이 ‘평화헌법’이라는 근사한 별칭을 달게 된 근본 이유다.
헌법 9조는 두 개의 세부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제1항은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포기한다’는 것을, 제2항은 ‘1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과 그 외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베 총리는 헌법 9조를 개정하려는 이유로 ‘국제적 책임’을 들었다. 그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무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집단 안전보장에서 일본이 책임을 완수할 수 있을지 논란이 남는다”고 말했다. 주변국 또는 동맹국에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본이 유엔 평화유지군 등의 일원으로 참여하려면 헌법 9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국의 군사력 강화 의도를 ‘이웃나라를 돕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포장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비슷한 시간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정전협정 파기’를 선언한 북한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지지하는 군중집회가 평양에 이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흥분했다. 지난 5일 북한은 핵실험에 대한 유엔의 대북제재 움직임과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반발하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다.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겠다고 한 것이다. 7일엔 평양 김일성광장에 10만여명을 모아놓고 ‘(정전협정 파기를 지지하는) 평양시 군민대회’를 열었다. 원산에 대규모 병력이 집결하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부대가 한국의 수도권을 겨냥한 모의사격 훈련을 하는 등 군사행동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한쪽에선 전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한쪽에선 이웃나라 전쟁에 참여할 권리를 확보하겠다고 나서는 두 풍경이 별개로 느껴지지 않는 건 혼자만의 기우일까.
안재석 <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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