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우고 차베스

입력 2013-03-07 17:23
수정 2013-03-08 00:40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남미 베네수엘라는 지구 반대편의 먼 나라이지만 낯설지만은 않다. 우선 미인이 많기로 유명하다. 미스 유니버스 역대 우승자 중 미국(8명) 다음인 6명을 배출했을 정도다. 지역마다 수시로 미인대회가 열리고, 미인대회 출전자를 양성하는 미인사관학교가 성업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가장 유명했던 베네수엘라 사람은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다. 차베스는 2006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어제 이곳에 악마가 왔다 갔는지 연단에서 아직도 유황 냄새가 난다”고 일갈했다. 전날 연설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말이다. 차베스는 부시를 향해 비겁자 살인자 술주정뱅이 등 온갖 독설을 퍼붓는 스토커였다. 오바마 대통령도 차베스로부터 사기꾼 소리를 들었다.

중남미 반미좌파 동맹의 맹주였던 차베스에겐 혁명가와 포퓰리스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999년 집권한 뒤 자본주의는 죽었다며 석유산업 국유화, 외국기업 몰수에 나섰다. 주변 17개국에 석유를 싸게 주는 ‘페트로 카리브’ 프로그램으로 좌파이념 전파에 주력했다.

또한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빈곤층 우대정책으로, 집권 14년 동안 빈곤율을 50%에서 27%로 떨어뜨린 성과도 올렸다. 빈곤층의 절대 지지는 군부 쿠데타와 국민소환 투표에도 살아남는 원동력이 됐다.

세계 1위 매장량을 자랑하는 석유는 차베스에겐 화수분이었지만 국민에겐 독이 됐다. 일찍이 1970년대 베네수엘라 석유장관은 “‘악마의 배설물’이 우리를 파멸시킬 것”이라고 예언했다. 땀흘려 일하기보다는 오일머니로 정부가 공짜로 주는 혜택에 안주하게 만들 것이란 경고였다.

그 결과가 연평균 23%에 달하는 인플레이션, 높은 범죄율과 부패다. 원유 수출외엔 내세울 산업이 없다. 수도 카라카스에선 도요타를 타고 아이폰을 쓰면 대낮에도 공격받았다고 한다. 지식인 자본가 기술자 등 줄잡아 100만명이 이민을 떠났다.

그는 수시로 방송연설에 나섰는데 한번에 12시간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자본주의, 알코올중독, 가슴확대 수술 등을 혐오했고 반대캠페인도 벌였다. 스트레스 탓에 커피를 하루 40잔씩 마신 커피중독자이기도 했다.

차베스는 19세기 독립영웅인 볼리바르의 혁명을 지향하며 ‘21세기 볼리바르’를 꿈꿨던 것 같다. 국명을 ‘볼리바르 베네수엘라 공화국’으로 변경했다. 흥미로운 것은 차베스가 바꾼 국기다. 국기에 그려진 말의 방향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려놓은 것. 왼쪽으로만 가겠다는 다짐이란 해석이다.

지난 5일 차베스가 5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미국에 맞짱 떴지만 한낱 암에는 굴복하고 말았다. 영원한 권력은 없는가 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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