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베레모 쓴 빈민 영웅" vs "미치광이 반미 독재자"

입력 2013-03-06 16:46
수정 2013-03-07 04:16
차베스 평가 극과 극


1992년 2월. 38세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공군 대령은 붉은 베레모를 쓴 채 국영방송 TV 카메라 앞에 섰다. 부패 정권에 항거해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실패하자 방송연설을 조건으로 항복한 때였다. 그는 연설을 통해 “이 나라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전진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지금’ 실패했을 뿐이다”는 말을 남기고 감옥에 갇혔다.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차베스는 6년 뒤 대통령 당선에 성공했다.

‘빈민들의 영웅’과 ‘미치광이 독재자’. 차베스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뉜다. 그는 베네수엘라 빈민층의 열띤 지지를 얻었다.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펼쳤던 복지정책 덕이었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국가들로부터는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고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부정하는 독재자란 비판을 받았다.

차베스는 1954년 베네수엘라 남부의 작은 농촌마을 사바네타에서 태어났다. 그는 교사인 부모 밑에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릴 적 꿈은 화가와 야구선수였다. 그의 꿈이 바뀐 건 17세에 수도 카라카스의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소년의 눈에 베네수엘라의 불평등과 부패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차베스는 사회의 모순을 바꿀 수 있는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1982년 군대 안에서 혁명운동그룹을 만들었다. 1992년엔 부패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동료 장교들과 쿠데타를 감행했지만 실패 후 투옥됐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이를 계기로 차베스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붉은 베레모를 개혁의 상징으로 삼은 그는 1998년 대선에서 부패한 정부에 반기를 든 지도자라는 명성을 활용, 대통령 당선에 성공한다. 그의 나이 44세였다.

차베스는 자신의 월급 1200달러를 모두 장학금으로 내놓고 정부 소유의 전용기를 파는 등 파격적인 모습으로 국민에게 다가갔다.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무상의료 등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반대파의 쿠데타를 겪으면서도 빈민층의 지지를 받아 4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지원하는 한편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중남미 반미 국가 연대를 이끌기도 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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