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은 17번홀 트리플보기 '희생양'…우즈·매킬로이도 발목 잡혀
톰슨, 혼다클래식 2타차 우승
곰처럼 다부진 체격과 황금빛 머릿결 때문에 ‘황금곰’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는 잭 니클라우스(미국)는 프로들도 까다로워하는 난코스를 만들기로 유명하다. 4일(한국시간) 미국 PGA투어 혼다클래식(총상금 600만달러)이 막을 내린 플로리다주 팜비치가든스의 PGA내셔널 챔피언코스(파70·7110야드) 15번(파3), 16번(파4), 17번홀(파3)은 ‘베어 트랩(bear trap)’으로 불린다. 세계적인 코스 디자이너 톰 파지오가 1981년 설계한 것을 니클라우스가 1990년에 개조하면서 난이도를 높인 것. 프로들은 이 3개홀을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GC의 ‘아멘코너’(11~13번홀)보다 어렵다고 혀를 내두른다.
2009년 이 대회 챔피언인 양용은(KB금융그룹)은 마지막 날 베어 트랩의 최대 희생양이 됐다. 16번홀까지 합계 3언더파로 공동 4위를 달리던 양용은은 베어 트랩의 마지막 홀인 17번홀에서 티샷한 볼이 그린 뒤쪽 벙커로 들어가는 위기를 맞았다. 벙커턱 쪽에 볼이 멈추는 바람에 백스윙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 어정쩡한 벙커샷 때문에 볼은 그린을 넘어 반대편 해저드로 들어가버렸다. 1벌타를 받고 친 네 번째샷은 4.5m 지점에 떨어졌다. 2퍼트로 홀아웃하며 트리플보기로 무너진 그는 공동 18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2011년 8월 바클레이스(공동 6위) 이후 18개월 만에 찾아온 ‘톱10’ 진입의 기회를 놓쳤다. 공동 4위의 상금이 22만6200달러이고 공동 18위 상금이 7만8240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그는 이 홀에서 14만7960달러(약 1억6000만원)를 날려버린 셈이다.
세계 랭킹 1, 2위인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 타이거 우즈(미국)도 베어 트랩에서 발목을 잡혔다. 우즈는 1, 2라운드 베어 트랩에서 모두 파를 기록하며 무사히 넘어갔으나 3라운드 17번홀에서 더블보기를 범한 데 이어 마지막 날 15, 16번홀에서 연속 보기를 하며 주저앉았다. 18번홀(파5) 이글로 간신히 4오버파 76타를 친 우즈는 합계 4오버파 284타로 공동 37위를 했다. 나흘간 한번도 언더파 스코어를 내지 못한 우즈는 “(내 플레이에) 청소가 필요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2라운드 도중 사랑니 통증을 호소하며 기권한 매킬로이도 베어 트랩의 악몽에 시달렸다. 첫날 베어 트랩을 파로 막은 매킬로이는 둘째날 10번홀에서 출발했다. 그는 16번홀에서 트리플보기를 하고 17번홀에서 보기를 범한 뒤 다음홀에서 두 번째샷이 물에 빠지자 경기를 포기했다.
이날 우승 경쟁자들도 줄줄이 베어 트랩에서 주저앉았다. 2타차로 추격하던 루크 거스리(미국)는 14번홀(파4)에서 티샷이 OB나면서 더블보기로 흔들리더니 17번홀에서 1m의 짧은 파퍼트를 놓쳐 합계 5언더파로 3위에 만족해야 했다. 리 웨스트우드(영국)는 15번홀에서 티샷한 볼이 벙커에 빠져 보기를 범하고 18번홀에서도 보기를 하며 합계 2언더파 공동 9위에 그쳤다.
합계 9언더파 271타로 생애 첫승을 거머쥔 마이클 톰슨(미국)은 최대한 안전한 전략으로 베어 트랩에 임했다. 홀에 붙이기보다는 그린 중앙에 볼을 떨궈 2퍼트로 파를 잡는 작전을 구사했다. 15번홀에서 티샷을 홀로부터 14m 지점에 떨군 뒤 2퍼트로 파를 기록했고 16번홀에서도 그린 중앙을 겨냥해 10m 지점에 볼을 세웠다. 첫 퍼트가 짧아 1.2m 거리의 파퍼트를 실패하며 2타차 추격을 허용했으나 17번홀(파3)을 파로 마무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톰슨은 앞서가던 제프 오길비(호주)가 18번홀에서 버디를 낚아 1타차로 쫓긴 상황에서 두 번째샷이 그린 왼쪽 벙커로 들어가 마지막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벙커샷을 1.5m에 붙인 뒤 침착하게 버디를 성공시키며 우승을 자축했다. 우승상금 108만달러를 거머쥔 톰슨은 “일곱 살 때부터 바랐던 꿈이 이뤄졌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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