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다시 맞은 3·1절, 민족에서 세계로 나아가자

입력 2013-02-28 16:50
수정 2013-03-01 00:04
오늘은 94번째 맞이하는 3·1절이다. 기미년(1919년) 3월1일 정오, 방방곡곡 대한독립 만세가 거대한 물결을 이뤘다. 비록 망국의 처지였지만 만방에 민족혼을 떨친 날이다. 하지만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인해 사상자가 수만명에 달했다.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될 만행과 저항의 역사다.

3·1운동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 식민지에서 일어난 첫 대규모 민족저항이란 점에서 세계사적으로도 의의가 깊다.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의 물꼬를 튼 역사의 터닝포인트였다. 물론 그 전에 크고 작은 독립운동이 있었지만 대개는 왕조 복원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반해 3·1운동은 자주독립 국가를 지향한 최초의 근대화 운동이란 점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뒤이어 민주공화체제의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이에 자극받아 그해 중국에서 5·4운동이 일어났고, 인도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운동, 터키의 민족운동, 이집트의 반영자주운동 등으로 잇따라 번져나갔다. 우리 선조들은 한 세기 전 피억압 민족들의 저항의식을 일깨우고 불을 댕긴 아시아의 등불이 된 것이다.

그로부터 100년 가까이 흐르고 있다. 일본은 아직도 독도 도발, 야스쿠니 신사 참배, 과거사 부정 등 저열한 제국주의 의식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은 달라져야 한다. 지금은 저항이 아니라 국력과 국격을 경쟁하는 21세기다. 우리 상품이 200여개국에 팔려나가고 세계 어디든 한국인이 진출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좁은 민족주의에 갇혀 한민족의 잠재력을 스스로 부정한다면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제는 폭력적 제국주의와 이에 저항하는 민족주의 간 대립이라는 과거의 도식에서 벗어나 시야를 보편 세계로 넓혀야 할 때다. 민족을 넘어 보편적 가치를 선도해 나가자. 그것이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길이요 동북아 평화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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