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 김종훈, 15세때 이민간 벤처신화 ‘한국의 미래’ 연다

입력 2013-02-17 17:19
수정 2013-02-18 04:23
노벨상 13명 배출한 벨연구소 이끌어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을 설계할 새 정부 미래창조과학부의 첫 수장으로 김종훈 알카텔-루슨트 최고전략책임자(CSO·54)가 발탁됐다. 김 장관 후보자는 1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 최고 민간 연구·개발(R&D) 기관인 알카텔-루슨트 벨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미국 이민 1.5세대 한국인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정부조직 개편 핵심 부처 장관직에 이민자 출신을 발탁했다는 점에서 ‘파격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후보자는 중학교 2학년 때인 1975년 가난을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갔다. 그의 가족이 정착한 곳은 메릴랜드의 빈민촌. 이민은 역경의 나날이었다. 가난은 물론 언어장벽, 인종차별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신문배달과 편의점·주방보조 아르바이트 등 밤새 일해 학비를 벌었다. 일이 끝나면 학교로 달려갔다. 잠은 수업 후 2시간가량 자는 게 전부였다. 잠이 부족한 탓에 교통사고를 당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죽기살기로 공부한 끝에 미국 명문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과에 진학, 기술경영학 석사학위까지 따냈다. 메릴랜드대에서는 보통 4~6년 걸리는 공학박사 학위 과정을 최단기인 2년에 해치웠다. 이 기록은 아직도 전설로 통한다. 몸에 밴 부지런함이 그의 무기였다. 논문 준비에 파묻혀 새벽 2시를 오후 2시로 착각, 점심을 먹으려 했던 일화도 있다.

1992년 32세였던 김 후보자는 수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고 벤처회사를 설립했다. 이름은 유리시스템즈였다. 큰딸 이름(유리)을 땄다. 당시 그는 “5년 안에 10억달러 가치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꿈 같은 목표였다. 그러나 꿈은 이뤄졌다. 그는 해군 복무 경험을 살려 ATM이라는 군사 통신장비를 개발했다. 서로 다른 통신 네트워크(무선 구리선 광케이블) 사이에서도 데이터가 제대로 전달되게 하는 신기술이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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