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돈 풀기' 사실상 인정…"엔低 언급 없었다" 일본 안도

입력 2013-02-17 16:29
수정 2013-02-18 01:37
G20 "환율전쟁 자제" 합의했지만…


“각자도생(各自圖生·제각기 살아 나갈 방법을 꾀함).”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지난 16일(현지시간) 폐막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한 한 신흥국 고위 관료는 ‘경쟁적인 통화가치 평가절하를 자제’하기로 약속한 이날 공동성명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경쟁력을 목적으로 환율 목표치를 설정하면 안 된다”고 명시하면서도 일본을 직접 거론하지 않은 건 “엔화 약세는 국내 경기부양책의 부산물일 뿐 목표가 아니다(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는 일본의 주장을 인정한 셈이라는 얘기다. 결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계속하고, 신흥국들은 자본 통제 등을 통해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환율, 시장에서 결정돼야”

이번 회의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건 아니다. 공동성명에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점을 명시한 건 상당한 성과다. 위안화 가치를 엄격히 관리해온 중국이 성명에 참여했다는 건 의미가 크다. 일본으로서도 정치인들이 엔저(低)를 유도하는 발언을 통해 환율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웨인 스원 호주 재무장관은 “G20 회의에 5년째 참석했고 그동안 환율 자유화에 대해 여러 번 토의했지만 이번처럼 공감대를 형성한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옌스 바이트만 독일 중앙은행(분데스방크) 총재는 “정치적 의도의 통화가치 절하는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할 뿐 아니라 (경쟁국들의) 반발만 불러일으킨다는 데 G20 회원국들이 동의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통화가치 하락의 직접적 원인인 선진국들의 금융완화 정책은 허용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변한 것이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베스트셀러 ‘커런시 워(Currency Wars)’의 저자 제임스 리카즈는 한국경제신문에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며 “통화전쟁에 대해 누구도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믿지 않는 의미 없는 선언만 내놨다”고 평가했다.

○엔화 추가 하락 우려 커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일본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아소 부총리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고 전했다. 회의 기간 내내 일본의 엔저 정책이 언급되지 않고 성명서에도 일본이 명시되지 않아 대표단이 한숨을 돌렸다는 얘기다. 아소 부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엔저를 질타하는 목소리는 없었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에서는 이번 회의를 계기로 엔화 가치가 추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졌다. 지난 12일 G7 회의 이후에는 혼란이 빚어져 엔화 가치가 요동쳤지만 이번 회의에서는 주요국 정부가 엔저를 용인한 것이 좀 더 분명해졌다는 해석이 나오면서다. 다카시마 오사무 씨티은행 애널리스트는 “엔화 약세를 제어하던 불확실성이 사라졌다”며 “조만간 엔화 가치는 달러당 95엔대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지나친 엔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졌다.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니혼게이자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엔화 약세 정책은 수입물가 상승과 국채가격 폭락으로 이어져 재정 위기를 불러올 공산이 크다”며 “아베노믹스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유창재/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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