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피카소' 바스키아, 서울을 홀리다

입력 2013-02-17 16:13
국제갤러리 내달 31일까지 회고전 개최…자전적 삶 등 형상화한 대작 18점 선봬



‘낙서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는 미국 화단에서 ‘검은 피카소’ 혹은 ‘미술계의 제임스 딘’으로 불린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티인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982년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소개로 뉴욕 화단 중심부로 단숨에 진입했다가 마약 중독으로 28세에 요절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바스키아는 1970년대 말 맨해튼 도심 건물과 지하철 외벽에 스프레이나 크레용으로 낙서 그림을 그리는 그라피티(graffiti) 그룹 세이모(SAMO·Same Old Shit)를 결성하는 등 ‘그라피티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1982년에는 세계적인 현대미술제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 최연소로 참여한 데 이어 미국 휘트니 비엔날레(1983), 뉴욕현대미술관(1984)에 잇달아 초대되며 국제 미술계의 스타덤에 올랐다.

바스키아의 1~4m 대작들이 서울의 새해 화단을 수놓고 있다. 내달 31일까지 서울 사간동 국제갤러리에서 펼쳐지는 ‘바스키아전’에는 천진난만한 어린애의 낙서 같은 그림 18점이 걸렸다.

작품들은 낙서에 기초하고 있지만 흑인으로서 인종차별을 경험하며 자란 작가의 성향 때문에 꽤 자전적이고 정치적이다. 198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적인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엔 남미계 히스패닉의 정체성,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비판, 흑인 영웅에 대한 찬사라는 일관된 메시지가 흐른다. 야구선수 행크 에런, 음악가 찰리 파커, 맬컴 엑스, 제시 오언스, 빌리 홀리데이 등 흑인 명사들을 강렬한 색감으로 묘사한 작품들은 1980년대 미국 사회상을 다시 보는 듯하다. 표현 형식 역시 혁신적이다. 만화와 해부학을 정치적 이슈와 결합한 작품, 흑인을 상징하는 검은 색깔의 인물화, 낙서와 기호를 화면 위에 붙인 콜라주 작품, 존경과 찬미의 상징으로 ‘왕관’을 그려넣은 작품 등에는 단순한 장난기로만 흘려버릴 수 없는 비극적·자전적 스토리와 사회비판 정신이 함께 묻어 있다.

1982년작 ‘무제(손의 해부)’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비장을 들어내야 했던 7세 때 어머니로부터 선물 받은 책 ‘그레이의 해부학’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배, 왼쪽 척추, 흉곽, 심장 등 근육을 나타내는 낙서들을 화면에 덕지덕지 칠했다. 솔 뮤직과 같은 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구급차와 비행기를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묘사한 1981년작 ‘무제’ 역시 교통사고에 대한 암시를 시각화했다. 고향 브루클린 라가디아 공항과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착륙을 암시하는 비행기,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행크 에런의 성 ‘Aaron’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AAAAA’라는 반복적인 문자 등은 전통적인 미술 언어에 구애 받지 않은 바스키아만의 독특한 시각언어들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학 책에서 내장기관 드로잉 이미지를 차용한 1986작 ‘무제(허파)’를 봐도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이미지와 단어들이 화면에 가득하다.

바스키아는 국제 경매시장에서 ‘블루칩 작가군’에 속한다. 지난해 세계 경매 시장에 출품된 바스키아의 작품은 총 90점. 이 중 78점이 팔려 낙찰률 87%, 낙찰총액 1억6144만달러(약 1700억원)를 기록했다. 1981년에 제작된 2m 크기의 ‘무제’는 지난해 11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2540만달러에 팔려 자신의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미술 외에도 디자이너, 밴드 멤버 등으로 활약한 바스키아의 회화에는 유머와 비판이 공존한다”며 “사이 트웜블리의 고상함과 앤디 워홀의 대중성, 장 뒤뷔페의 야성이 모두 갖춰져 있다”고 평했다. (02)735-844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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