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병영 이야기
1975년 5월 공군교육사령부 입대…지덕체 겸비 비행단장 부관 맡아
인생관·생활방식 바꾸게 된 계기
우리 집 옷장엔 공군 군복 한 벌이 모셔져 있다. 군생활 중 입었던 공군장교 정복이다. 중위 계급장과 명찰도 그대로다. 이 군복이 우리 집 보물 1호가 된 것은 내가 군생활을 거치며 인생이 180도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학을 마친 뒤 1975년 5월 공군교육사령부로 입대, 5개월 동안 고된 훈련을 받았다. 첫 배속지는 신설부대인 김해비행단이었다. 인근 구포에 하숙집을 정하고 통근버스로 출퇴근했다. 당시 공군장교 복무기간은 4년이 넘었지만 퇴근 후엔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어 청년 장교에겐 행복한 시절이었다.
10개월가량 기지전대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비행단장이 새로 부임했다. 어느 날 인사처장이 날 부르더니 비행단장 부관을 하라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부관을 맡으면 부대 내 숙소에서 생활해야 하고 나만의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었다. 부관만은 못하겠다고 마음먹고 비행단장을 면담했다. 그런데 한 시간도 안돼 마음이 바뀌었다. 신임 비행단장은 공군사관학교 2기생인 김동호 장군이었다. 유능한 전투기 조종사였을 뿐만 아니라 영어와 일어에도 능통했다. 검도와 유도는 유단자였고 서예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대사관 무관으로 3년 동안 근무한 경험 때문인지 의전에도 능했고 독서량도 대단했다. 그야말로 지덕체를 겸비하고 있었다.
면담 때 장군은 소위인 나에게 무조건 부관을 맡으라고 명령을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장군은 먼저 본인 소개부터 했다. 애로사항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부관 근무가 힘든 점도 있지만 배울 것도 많으니 열심히 하면 인생공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김 장군의 마음을 여는 리더십에 매료됐다. 부관을 맡았다.
그 후 내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김해비행단을 거쳐 한미연합사 창설준비위원회, 공군본부 감찰감실, 공군본부 작전참모부 등에서 김 장군을 주로 모셨다. 이런 4년을 거치며 인생관과 생활방식이 완전히 변했다.
첫째, 존경받는 것도 좋지만 존경할 대상이 있으면 더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됐다. 장군을 진심으로 존경했고 일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다. 아무리 힘든 일도 긍정적으로 대하면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점도 체득했다. 그 뒤로 존경할 만한 분을 찾는 버릇이 생겼고 그런 분을 만나면 정성껏 모셨다. 인생을 바꾼 첫 번째 교훈이다.
둘째, 최선을 다하고 최고를 추구하게 됐다. 위관급 장교와 장군의 안목은 다를 수밖에 없다.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면서 생각하는 방법도 배웠다.
셋째, 시(時)테크 원리도 배웠다. 국내 경영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시테크’는 1992년 쓴 책이다. 내가 만든 이 용어와 이론은 민간기업과 공공부문 경영혁신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부관 근무를 잘하려면 스케줄링, 스피드, 타이밍을 알고 대응해야 한다. 난 시간 중심의 사고방식을 배웠고 경영컨설턴트 등으로 일하며 이를 발전시켜 시테크 이론을 탄생시켰다.
넷째는 마무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1979년 9월 말 서울 대방동에 있던 공군본부에서 제대했다. 토요일 오후 3시까지 근무하다 혼자 전역신고를 했다. 4년5개월이나 근무하다 보니 말년엔 한두 달 근무열외를 시켜주는 관행이 있었다. 그러나 난 마지막 날까지 정상근무를 했다. 이런 버릇은 그 후 종합상사, 방송 사회자, 대학총장을 퇴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5월 중앙공무원교육원장으로 부임할 때도 그날 오전 대학총장 이임식을 하고 오후에 교육원장 취임식을 했다. “마무리가 좋아야 모든 것이 아름답다.” 공군에서 형성한 가치관이다. 지금 내 사무실엔 사진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몇 년 전 김 장군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교육원 간부들 사이에 이분이 누구인지를 두고 화제가 됐다. 이렇게 얘기했다. “이 분은 공군에서 내가 모시던 장군인데 지덕체를 겸비한 리더이며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귀인입니다.” 공군은 청년시절 내 인생의 용광로였다.
윤은기 <중앙공무원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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