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역량 수준 따라 다섯단계 구분…단계별 가격전략 세워야

입력 2013-02-14 15:30
Let's master 프라이싱 (1) 프라이싱 프로세스

평균가격 1% 개선했을때 영업이익 8.7% 증가
가격 결정력 약한 기업부터 시장 지배하는 초우량기업까지
자신의 역량 수준 파악해 맞춤 프라이싱 전략 세워야


경영자들에게 기업의 수익성 향상은 영원한 고민거리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수익성이 높은 고객은 누구인가? 그 이유는?” “어느 부분의 운영을 효율화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가격을 좀 더 전략적으로 설정, 매출과 수익성을 향상할 수 있을까?”

글로벌 12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균 가격 1%를 개선했을 때 영업이익이 8.7% 늘어났다고 한다. 요즘과 같은 저(低)성장 시대에서는 기업현금 유출입에 대한 현금흐름 관리, 일하는 방식과 프로세스의 변화를 통한 운영 효율성 향상과 함께 프라이싱(pricing·가격결정)은 중요한 전략적 도구다. 저성장이 장기화하고 매출 증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들 간 생존을 위한 가격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은 “기업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하나의 요인을 뽑는다면 가격 결정력”이라고 말했다. 경쟁업체에 시장을 빼앗길 염려 없이 편안하게 가격을 올릴 수 있다면 탄탄한 기업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는 현재의 어려운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가격 인하를 시도하고 있는데, 가격인하 의사결정이 최선의 방법인지는 스스로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기업의 비용과 판매량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 영업이익률이 8%인 기업에서 가격을 1% 인하했다면 이익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까. 매출 대비 이익률은 8%에서 7%로 감소하므로 수익성이 8분의 1(12.5%)만큼 나빠진다. 다른 예로 영업이익률이 20%이고 판매관리비율이 매출액의 25%인 조직에서 5% 가격을 낮추기로 의사결정을 했다고 하자. 기존의 영업이익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판매물량을 9% 늘리거나 영업관리비를 20% 줄여야 한다.

지난 25년간 프라이싱을 특화해 컨설팅을 수행해 오고 있는 프라이싱 솔루션스(Pricing Solutions)의 폴 헌트 대표는 기업의 프라이싱 역량 수준이 향상될수록 수익성이 향상되는 것을 발견했다. 헌트 대표가 개발한 ‘월드클래스 프라이싱 모델’은 기업의 프라이싱 역량 수준을 크게 다섯 가지 단계로 구분했다(그림 1).


# 레벨1. 소방관=물건이 안 팔리면 가격을 낮추고, 잘 팔리면 가격을 올리는 등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기업이다. 가장 초보적 단계다. 이런 기업들은 접수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는 소방관처럼 매일매일 일어나는 시장 상황과 고객의 가격 인하 압력, 그리고 경쟁사 가격 변동에 대응하기에도 바쁘다. 주로 영업부서가 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약 30%의 기업이 이 단계에 머물러 있다.

# 레벨2. 경찰관=‘원가+X% 마진 또는 전년대비 O% 인하’ 등 가격을 통제하는 기업이다. 레벨1에서 레벨2로 향상시 이익이 3~5% 올라간다. 소방관 단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업이 주체적으로 가격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 내부적으로 규칙을 정하고, 재무부서가 그 규칙에 따라 가격을 통제하고 강요할 수 있는 경찰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이 단계다.

소방관 단계에서 개인의 임기응변이 중요했다면, 이 단계에서는 보다 조직적이고 규칙적으로 프라이싱이 이뤄진다. 이로 인해 영업부서는 영업정책이 유연하지 않아서 사장과 고객 요구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불평·불만이 늘어간다. 소방관 단계에 머무르는 기업들은 흔히 제품원가와 판매정가만을 고려해 가격을 결정하지만, 경찰관 단계의 기업들은 정가 외에도 고객에 대한 보증, 재무지원, 일시불 지급에 따른 할인 등 많은 요소들을 감안해 가격을 결정한다. 영업부서의 보상체계는 판매량이 아닌 기업의 수익성에 초점을 맞추도록 이익과 연계해 설계한다. 약 40%의 기업들이 레벨 2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 레벨3. 파트너=영업, 재무, 마케팅 등 내부 부서 및 협력업체와 조율해 단순히 가격이 아닌 ‘고객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레벨2에서 레벨3로 이동하면 이익이 2~4% 향상된다. 약 20%의 기업들은 경찰관 단계에서 더 발전한 ‘파트너’ 단계에 도달해 있다.

이런 기업들은 고객이 단순히 가격에 반응해 구매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객들에게 설문 조사하면 구매결정에 있어서 가격을 최우선 기준으로 꼽는 비율은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고객은 최상의 가격보다는 최상의 가치를 원한다. 파트너 단계에 오른 기업은 가치 지도(value map) 도구를 통해 고객이 인지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가격을 결정한다.

서비스, 제품 차별화, 브랜드 등에 기반해 시장을 세분화하고, 각 부문에 적합한 값을 설정한다. 양질의 경쟁자 가격 정보를 획득하고 자사의 경쟁우위를 고려해 가격 주도 또는 순응 전략을 취한다. 고객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영업, 재무, 마케팅 등 여러 부서들이 협조하며 모두가 한 배에 탔음을 자각하고 다른 부서를 탓하지 않는다. 데이터에 기반한 상호 토의와 설득을 통해 자연스럽게 가격결정에 대한 컨센서스를 형성한다.

# 레벨4. 과학자=과학적 도구를 사용해 수요의 가격탄력성을 분석하고, 가격을 최적화하는 기업이다. 레벨4로 향상하면 이익이 1~2% 증가한다. 이 단계에서는 보다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정확성을 가미한다. 레벨 3의 가치기반 프라이싱에서 가격 최적화 개념으로 한 단계 진보한다.

가격 최적화를 위해 가격탄력성을 측정하는 소프트웨어와 가격 탄력도 리서치를 활용한다. 가격탄력성은 가격이 변화함에 따라 소비자의 구매수요가 변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가격탄력성을 파악하기 위해 결합분석(conjoint analysis)이 가장 유용하게 쓰인다.

레벨 4 기업에서는 일정 비율의 가격 인상을 모든 제품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가격 탄력성을 고려해 선별적으로 가격 인상을 도모한다. 레벨 4의 기업에서는 분석적 역량을 가진 사람을 보유하고 있으며, 프라이싱에 대한 전사적인 문화가 형성돼 있다. 단지 10% 정도의 기업만이 최적의 가격을 알아낼 수 있는 수준, 즉 레벨 4에 도달해 있다.

# 레벨5. 마스터=지속적으로 4 단계를 유지하는 초우량 기업이다. 상위 1%의 기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레벨 5 기업들은 프라이싱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지원이 있고, 레벨4 단계를 최소한 2년간 유지한 상태다. 신제품 개발 단계부터 ‘가격 계획(design to price)’ 프로세스가 정착돼 경쟁사들에 비해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레벨5에 해당하는 기업으로는 IKEA, 메리어트호텔, 레고 등이 꼽힌다.

모든 기업은 프라이싱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다. 제품 출시 초기에는 이 프로세스가 잘 작동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프라이싱은 점점 반복적이고 수동적인 작업이 돼가며,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수익성 향상을 위해서 자사의 프라이싱 역량 수준이 어느 단계인지를 파악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정종섭 <웨슬리퀘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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