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책임총리' 논란 언제까지…

입력 2013-02-13 17:09
수정 2013-02-13 22:33
홍영식 정치부 차장 yshong@hankyung.com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미국 대통령 시절 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의 업적에 대한 질문을 받자 “글쎄, 1주일 시간을 더 준다면 한 가지쯤 생각해낼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부통령이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장 무의미한 직책”이라고 신세 한탄을 한 사람은 미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존 애덤스다. 2인자의 처신은 이렇게 어려운 모양이다. 보폭을 조금이라도 넓히면 1인자의 견제를 받는다. 한계를 설정해 1인자의 눈치를 보면 존재감을 잃기 십상이다.

대한민국 국무총리의 위상을 살펴보자. 헌법 제86조 2항에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고 명시돼 있다. 87조에는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대통령에 이어 국정 2인자임을 규정한 것이다.

위상, 정권 따라 천차만별

실상은 어떤가. 지난 65년간 41명의 총리 위상은 정권에 따라, 인물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헌법적 해석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었다. 물론 ‘실세 총리’도 있었다. 그렇지만 ‘얼굴 마담’에 가까운 사례가 더 많았다. ‘의전총리’ ‘대독총리’ ‘들러리총리’ ‘방탄총리’ ‘수석장관’ 등의 수식어가 붙곤 했다. 정국 전환용 카드로 발탁되거나 교체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총리실 근무 경험 당시를 기록한 저서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에서 취임 이후 퇴임 때까지 거의 매일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각하 심기’를 살핀 총리가 있다고 적었다. “이 글자를 키우라” “이 글자를 굵게 하라”며 대통령에게 보고할 자료를 고치는 데 온종일 걸린 총리도 있었다고 한다. ‘법대로’를 주장했던 이회창 전 총리는 4개월 단명으로 끝났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여야 대통령 후보들이 ‘책임총리’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총리 후보자로 낙마한 김용준 인수위원장에 이어 정홍원 후보를 발탁하면서 정치권에 책임총리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 후보자는 지난 8일 총리 지명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을 바르게 보필하는 것이 책임총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야당은 ‘보필’이란 단어를 두고 “비서실장에 어울리는 말”이라며 “의전총리, 무늬만 책임총리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연일 비판하고 있다. 책임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약속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모범적인 사례 남기자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연주하기 힘든 악기가 제2바이올린이라고 했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1인자 못지않게 2인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26년4개월 동안 총리를 지내며 마오쩌둥을 보좌했던 중국의 저우언라이를 비롯해 역사에서 1인자를 빛나게 했던 인물들이 적지 않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부통령을 지낸 앨 고어는 지명 수락 연설 전 부통령직에 관한 몇 가지 원칙을 정했고, 클린턴은 이에 동의했다. 고어는 자신의 역할을 ‘실질적 파트너’로 규정하고 8년의 재임기간 환경 과학 첨단기술 인터넷 우주탐사 등 특정 분야는 실질적인 책임을 갖고 챙겼다.

책임총리, 관리형 총리 논란을 떠나 총리제도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총리는 소신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하고, 헌법에 걸맞은 권한을 존중해주려는 대통령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박 당선인과 정 후보자는 이참에 65년간 이어져온 총리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논란을 끊고,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적인 사례를 남겨줬으면 한다.

홍영식 정치부 차장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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