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무덤' 中 폭스콘, 120만명 직선 노조 만든다

입력 2013-02-04 16:52
수정 2013-02-05 04:05
조합원 120만명 민주화 실험 … 정부, 파급효과 촉각


아이폰 위탁생산업체인 대만 기업 폭스콘의 중국 공장에 있는 120만여명의 근로자들이 무기명 직접 투표로 노조위원장 등 공회(노조)간부들을 뽑기로 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4일 보도했다. 중국에 진출한 외자 기업 중 상당수가 이미 직접 투표로 노조간부를 뽑고 있지만 직원 수가 많은 대기업인 데다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유명한 폭스콘의 직선 노조 설립은 이례적이다. 정부 주도의 노조 설립에 의존해온 중국 기업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20만명 ‘직접 선거’

FT에 따르면 폭스콘 노사는 노조위원장과 20개 노조위원회 대표, 1만8000명의 노조위원을 무기명 직접 투표로 뽑기로 합의했다. 미국의 노동감시단체인 공정노동위원회(FLA)는 조만간 폭스콘을 방문, 투표 방법과 노동자의 권리 등을 교육할 계획이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직선 노조가 있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노조는 있지만, 대부분 사측이나 공산당이 관리하는 이름뿐인 어용 노조다.

폭스콘은 애플 아이폰 등을 위탁생산하는 폭스콘테크놀로지그룹과 노키아, 모토로라의 제품을 만드는 폭스콘인터내셔널홀딩스로 구성돼 있다. 둘 다 대만 혼하이정밀의 자회사다. 중국 내 근로자 수만 약 120만명, 전 세계에 40개 공장(중국 내 공장 14개)을 갖고 있는 세계 최대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이다.

폭스콘은 최근 근로자들의 잇따른 자살과 파업으로 비판받았다. 열악한 근로 환경이 주요 원인이었다. 2010년 이후에만 16명의 근로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난이 이어지자 폭스콘의 주요 고객사인 애플은 FLA에 감사를 요청했고, FLA는 폭스콘에 근로자의 권익을 대표하는 ‘진짜’ 노조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압박이 결국 폭스콘의 직선 노조 설립 합의로 이어졌다.

○민주화 열풍으로 이어질까

중국 정부는 2010년부터 공식적으로는 직선 노조 설립을 권고하고 있다. 2010년 일본 혼다의 중국 공장 파업에서 시작된 전국적인 연쇄 파업이 발단이 됐다. 당시 혼다 근로자들은 당의 관리를 받는 노조가 오히려 노동자를 탄압한다고 비판했다. 파업이 점점 잦아지자 정부는 이를 무마하고 근로자들과 대화하기 위해 직선 노조 설립을 허가했다.

중국 정부가 실제로는 직선 노조 설립을 반기지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단 120만여명에 달하는 폭스콘 근로자들이 민주적 선거가 무엇인지를 배우면 중국 사회 전체에 미칠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이들이 민주화의 개념을 퍼뜨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푼응아이 홍콩폴리테크닉대 교수는 “단체 교섭권 강화는 단순한 임금 협상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닌 체계적인 노동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그러나 “개별 기업이 직선으로 노조를 뽑더라도 중국 노동법상 상급기관인 중화전국총공회(노동조합총연맹)의 관리를 받을 수밖에 없고, 결국 당의 간섭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일정 수준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에 도움이 되겠지만 완벽하게 자주적인 노조 설립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윤선 기자/베이징=김태완 특파원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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