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미시경제학 혁명가 게리 베커
미시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게리 베커(Gary S Becker)는 아버지는 캐나다, 어머니는 동유럽 출신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베커의 주요 관심은 유년 시절부터 인종차별, 불평등, 계층 갈등 등과 같은 사회문제였다. 그에게 경제는 관심 밖이었다. 프린스턴대에 진학해서도 경제학은 필수과목이기에 수강했을 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경제학을 연구하려면 시카고대로 옮기라는 당시 바이너 프린스턴대 교수의 조언에 따라, 베커는 시카고대로 갔다. 그가 진로를 경제학으로 바꾼 결정적인 계기를 이곳에서 만난다. 밀턴 프리드먼의 열정적이고 자신감에 넘치는 강의로 미시이론과 가격조정효과에 관한 것이었다. 경제학의 용도에 대해 의구심이 컸던 젊은 베커에게 프리드먼의 환상적인 강의는 하나의 감동이었다.
프리드먼 강의의 핵심 내용은 시장 참여자는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영리한 행위자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수지타산에 따라 투자하고 물건을 사고판다는 뜻이다. 수학에 남다른 능력을 타고난 베커는 이런 합리적 선택이론을 잘만 적용한다면 사회학에서나 다루는 세상의 다양한 문제를 경제학으로 풀 수 있다고 믿었다.
베커가 합리적 선택이론을 처음 적용한 분야는 어릴 때부터 미국 사회에서 자주 목격했고, 그래서 마음속으로 늘 궁금했던 차별 문제였다. 왜 특정 인종의 사람이나 여성들이 배격당할까 의구심을 가졌던 터였다. 능력이 스티브 잡스처럼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채용을 꺼리는 기업가들의 행동에 관한 것이었다.
베커는 기업가의 그런 행동이 초래하는 비용에 근거해 차별 현상을 이해하려고 했다. 흑인과 백인, 남녀를 가리지 않고 유능한 여성 또는 흑인을 고용한 경쟁 기업은 우위를 확보한다. 따라서 베커가 내린 결론은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은 모두에게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 그래서 차별 행위는 수지가 맞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차별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유경쟁이라고 역설한다.
베커는 이어 교육과 인력 양성, 보건 등 인적 자본의 형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인적 자본도 물적 자본의 형성을 위한 투자와 동일한 방식으로, 즉 비용과 편익의 의미로 분석이 가능하다고 봤다.
인적 자본론의 원조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슐츠였다. 그러나 베커는 교육과 소득의 관계 등 인적 자본론을 일반 이론으로 확대 발전시켜 1960년대 풍미했던 ‘교육경제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경제사상에서 인적 자본론의 혁명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베커는 비용-편익 분석의 접근을 결혼, 출산, 교육, 이혼 등 가족 문제에도 적용했다. 그의 이론적 세계에서 자녀는 냉장고와 같은 내구재나 다름 없다. 수지타산에 기초해 냉장고를 구매하듯 출산도 효용과 비용을 따져서 결정한다. 효용은 어린애를 키우는 재미, 노후에 자녀에 대한 부모의 심리적·재정적 의존 등이다. 비용은 좋은 일자리 포기와 같은 기회비용, 시간비용, 양육비용 등이다.
베커 이론세계에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건 출산이 수지맞는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나 그의 이런 주장엔 실증적인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웨덴 독일 등 많은 나라들이 1960년 이후 출산 감소를 막기 위해 출산 비용을 줄이는 가족정책을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계속 감소했다. 출산은 수지타산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가치관 등도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결혼도 수지타산에 근거한다고 베커는 주장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거추장스러운 존재다. 이혼도 전적으로 수지타산의 문제다. 그러나 그 같은 시각은 가족의 기반이 되는 유대감의 도덕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베커는 범죄에도 경제 분석틀을 들이댔다. 범죄는 수지맞는 일이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범죄를 통해 얻는 편익이 범죄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범죄자도 다른 모든 인간과 똑같이 인센티브에 반응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범죄를 막을 수 있는 길은 높은 검거율과 기소율, 그리고 엄격한 형벌이라고 베커는 주장한다. 그가 중죄에 대한 사형 제도를 수용하는 것도 범죄억제 효과 때문이다.
범죄에 관한 베커의 이론은 범죄가 개인의 탓이 아닌 환경과 빈곤의 탓이라는 좌파의 주장보다는 진전된 것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시장모델을 범죄에 적용함으로써 심각한 사회문제를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죄인이 얻는 이득과 기업의 이익이 동일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어서다. 범인의 범죄 행위와 기업의 이윤 추구 행위를 같은 선상에 놓아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 많다. 어떤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과정엔 그의 윤리관 및 기본적인 동기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부분이 상당히 깔려 있기 때문이다.
베커는 그의 효용 극대화를 전제로 한 시장모델을 범죄 가정 결혼 등과 같은 사회현상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했다. 기교가 넘치는 그의 착상과 대범함 그리고 학문적 야심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학문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면서 경제학의 지평도 넓혔다. 이것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그를 ‘미시경제학의 혁명가’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경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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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베커 사상의 힘 인적 자본론 확립… 경제학의 '新영토' 개척
베커는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을 전제로 한 효용-편익 분석틀을 통해 연구영역을 거침없이 확대해 나갔다. 그의 경제학을 ‘제국주의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제학의 ‘영토’를 넓혔다는 뜻이다. 그는 사회현상에 경제학의 분석 방법을 적용, 학제융합적 인식을 일깨웠다.
베커의 연구 결과는 경제학계에선 항상 논쟁거리였다. 그를 경제학의 이단아로 취급했고 연구영역 확대에 대해서도 강한 의구심을 표명했다. 좌파 논객들도 베커를 비판했다. 마르크스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인적 자본’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있어 자본은 원래 착취와 동일한 의미다. 그들은 교육이 소득 창출 능력을 높여주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줄 세우기, 또는 잘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도구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런 비판에 항복할 베커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연구 방법을 더욱 더 많은 사회현상에 적용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이런 그를 지원해주는 후원자들이 있었다. 그의 은사였던 시카고학파의 밀턴 프리드먼과 조지 스티글러였다. 이들은 베커의 연구 방법과 그 결과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비판자들의 비판 논리를 반박하는 데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베커의 이론은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내재하고 있다는 비판도 이어진다. 무엇보다 수지타산에 필요한 인간의 지적 능력, 즉 경제적 합리성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론은 현실의 인간은 물론 시장사회를 이해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오스트리아학파 하이에크의 비판을 받게 된다. 연구영역의 확대라는 의미의 제국주의적 태도 그 자체는 고무적이지만 하이에크의 시각에서 보면 베커 이론에 의한 영토 확장은 무모하고 위험하다는 비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베커는 정치활동에는 가담하지 않았다. 정부에 어떤 자문 역할도 맡지 않았다. 선거 캠프에서 일하지도 않았다. 연구에만 온 정열을 쏟았다. 그래서 학계에 미친 영향은 크다. 교육경제학, 가족경제학, 범죄경제학 등이 대학의 경제학 교육과목으로서 자리 잡는 데 기틀을 마련한 것은 그의 공로가 아닐 수 없다. 베커는 정치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정치권의 정책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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