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좋으면 100만弗 바로 'OK'…사무실·멘토 다 대줘

입력 2013-01-30 17:04
수정 2013-01-31 01:40
실리콘밸리 혁신의 비밀 (4) 스타트업 키워주는 생태계

액셀러레이터 벤처 투자·육성…대기업에 팔아 돈 버는 선순환
입주 업체절반 외국기업…삼성도 진출



“월릿키트(WalletKit)는 지갑에 든 각종 카드와 회원증, 티켓, 쿠폰 등을 하나로 합친 가장 쉬운 모바일 패스입니다. 현재 들고 다니는 지갑과 각종 카드는 몇 년 뒤면 골동품이 될 것입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시 카스트로가의 인큐베이터 겸 엔젤펀드 ‘500스타트업(500startups)’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엘리베이터 피치(elevator pitch)’ 연습이 한창 진행 중이다. 케빈 라자스카란 월릿키트 창업자는 “우리 사업 모델이 애플의 패스북, 구글 월릿을 뛰어넘을 것”이라며 투자를 설득했다.

‘엘리베이터 피치’란 투자를 받기 위해 투자자 앞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것이다. 승강기를 타고 3~4층을 올라가는 짧은 시간 내에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500스타트업 내부엔 열기가 가득했다. 2월 초 데모데이(투자자 앞에서 발표하는 날)를 앞두고 창업자들이 돌아가며 피칭 연습을 하고 동료와 멘토로부터 따끔한 지적을 받았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짧은 시간 동안 엘리베이터 피치를 제대로 못하면 투자자로부터 외면당하는 게 실리콘밸리의 현실이어서다.

500스타트업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라고 불린다. 아이디어 수준인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을 발굴, 첫 서비스나 제품을 내놓기까지 공간을 제공하고 육성하는 곳이다. 초기 종잣돈을 투자하기도 한다. 또 창업 경험을 가진 200여명의 멘토가 지속적으로 조언을 해준다. 기술과 자본, 사람을 이어주는 이벤트도 수시로 연다. 그야말로 창업을 위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크리스틴 차이 파트너는 “여기에서 투자와 멘토링을 받을 수 있고, 네트워크도 만들 수 있다”며 “실리콘밸리의 생태계를 활용해 세계적인 기업을 키워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엔 이 같은 액셀러레이터가 곳곳에 있다. 500스타트업과 와이콤비네이터, 플러그앤드플레이, 유누들 등이 선두주자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11월 현지에 오픈이노베이션 센터를 세우고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액셀러레이터는 대부분 스타트업을 창업해 돈을 번 사람이 만들었다. 500스타트업은 결제업체 페이팔(paypal)에서 마케팅을 담당했던 데이브 매클루어와 구글·유튜브에서 일했던 차이 파트너가 세웠다. 매클루어는 2002년 페이팔이 15억달러에 이베이에 매각되며 큰 돈을 벌었다.

차이 파트너는 “우리 회사는 초기 스타트업의 인큐베이션을 해주고 엔젤펀드 역할도 한다”며 “초기 단계여서 한 회사에 평균 5만달러가량을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2010년 설립된 500스타트업은 그동안 400여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소셜광고업체인 와일드파이어(Wildfire)다. 지난해 8월 구글에 3억5000만달러(약 3800억원)에 팔려 투자금을 몇백 배로 불려 회수했다.

현재 마운틴뷰 사옥엔 33개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절반은 미국 회사지만 절반 정도는 외국인이 만든 스타트업일 정도로 국제적이다. 인도에서 바로 온 회사도 4곳이 있다. 이곳에 모인 젊은이들은 훗날 페이팔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벤처 신화의 주인공을 꿈꾼다. 인도인인 라자스카란 창업자는 “인도에선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실리콘밸리에 와서 많은 멘토를 만났고, 지금 아이디어를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에 있다”고 웃었다. 500스타트업은 곧 뉴욕에도 센터를 연다.

500스타트업 자체도 스타트업이다. 2000년 버클리대를 졸업한 차이 파트너는 2003년 구글에 입사했다. 구글이 유튜브를 산 뒤 2007년 유튜브로 옮겼다. 그는 “유튜브에서 일하면서 고문이었던 매클루어를 만났고, 매클루어가 500스타트업 설립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500스타트업은 2010년 1차 펀딩에서 29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2차 펀딩을 진행 중인데 목표는 5000만달러다.

이처럼 실리콘밸리에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는 돈이 몰려든다. 아이디어 단계인 초기부터 기업공개(IPO) 혹은 매각 때까지 서너 차례에 걸쳐 투자를 받을 수 있다. 현지 벤처캐피털인 포메이션8의 브라이언 구 대표는 “여긴 돈이 널렸다. 아이디어만 좋으면 100만달러쯤 투자를 받는 건 쉽다”고 했다. 미국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8억6800만달러의 벤처캐피털이 실리콘밸리 1149개 스타트업에 투자됐다. 작년 미국에서 투자된 벤처캐피털의 41%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만큼 혁신적이고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들이 이 지역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얘기다.

마운틴뷰=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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