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민아 / 사진 오재철] "국경이란 건 당연히 비행기를 타고 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식한 고정관념은 멕시코를 떠나 과테말라로 들어서면서 ‘쨍그랑’ 무너졌다. “아, 내가 섬 아닌 섬나라에 살고 있었구나…”멕시코에서 과테말라로 넘어서는 국경은 버스에서 내려 출입국 수속을 마친 뒤 다시 버스에 오르는 것으로 간단히 끝…이 났다면 좋으련만, 공항에선 어렵지 않게 "한 장 더 주세요"하면 받을 수 있었던 그 흔한 출국카드를 잃어버려 출입국사무소 직원과 한참의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한 사람 당 300페소(약 26,000원)씩을 내고서야 멕시코 출국카드를 받고, 과테말라 땅으로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중미 여행의 진정한 시작점 과테말라. 그 중에서도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세계 3대 호수 중 하나인 아티틀란(Atitlan) 주변의 작은 마을인 산 페드로에 머문지도 보름이 지났다. 그 사이 우리 집(우리 방)이 생겼고, 우리 학교가 생겼으며,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 오늘은 집과 학교,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 속에서 조금씩 변하고 있는 나에 대한 이야기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산 페드로는 안전한 치안 상태와 싼 물가 덕분에 미국과 캐나다, 유럽 사람들에겐 스페인어를 배우기에 적격인 곳으로 유명하다. 자그마한 동네에 크고 작은 학교(라고 쓰고 실제로는 학원이라고 이해하면 됨)들이 옹기종기 많기도 하다. 그 중에우리가 선택한 곳은 바로 ‘산 페드로 스페인어 학교(San Pedro Escuela)’인데, “이게 학교(학원)야, 리조트야?” 싶게 생겼다. 한 마디로? 좋다. 울창한 숲 속 호숫가 옆 방갈로가 바로 교실이고, 이 곳에서 선생님과 학생이 일대일로 수업을 한다.
나테한 여행 Tip산 페드로의 수많은 스페인어 학교 중 어디를 골라가야 할까? 우리는 17년 전통의 ‘San Pedro Escuela’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옳았다. 학원비는 다소 비싸지만 선생님들의 수준이 높아서 단기간에 스페인어를 배우는 데 효과적이며, 토론수업과 다양한 교외 활동을 통해 실생활에서 직접 언어를 연습해 볼 수 있는 기회 또한 열려있다. (www.sanpedrospanishschool.org)
수업은 오전 8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7시쯤 일어나 준비해야 한다. 오래간만에 아침 일찍 일어나려니 힘들지만 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아 신나기도 한다. 호스텔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10분이 채 안 걸리는데도 아침마다 지각 일쑤다. 일대일 수업이기 때문에 오빠와 나는 선생님이 다르다.“오늘 뭐 배웠어?”, “나 오늘 이거 배웠다!”, “이런 거 배웠어?” 우린 은근 경쟁 모드로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 쫑알쫑알 수다를 떤다. 선생님과 일대일 수업이 끝나면 오후 5시 경 수준에 맞는 학생들이 모여 토론수업을 한다. 토론이라고 해봤자 기초반인 우리는 자기 소개와 안부 인사, 간단한 일상 회화 정도가 전부지만…
산 페드로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 외국 사람들과 친해지기 힘들 것 같다는 것 또한 나의 편견이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배움에 대한 의지와 욕심은 끝이 없어서 미국, 캐나다, 스웨덴 등 세계 각국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이 곳을 찾을 뿐더러 그 연령대 또한 다양하다. 새로 사귄 나의 친구들은 퀘백에서 온 온화한 성품의 60대 노부부, 스웨덴에서 온 50대 귀여운 학구파 아주머니, 그리고 콜로라도에서 온 50대 멋쟁이 학교 선생님도 있다. 물론 뉴욕에서 온 나와 동갑인 포토그래퍼 케빈도 있다.
사실 처음엔 “Hola (안녕)!” 한 마디 거는 데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첫 째날, 둘 째날, 셋째 날까지도 선생님과의 일대일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곧장 달려오기 일쑤. 그러나 이 낯선 세계에서 내가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 타인은 내게 관심조차 없다는 걸 알기에, 먼저 말 걸고, 먼저 다가가기 위해 용기냈다. 그리하여 지금은 학교 수업이 끝난 후 함께 옆마을로 놀러가기도 하며, 주말엔 함께 등산도 하고 카약도 타는, 국적과 나이를 불문한 살가운 ‘친구들’이 생겼다. 여행하며 한국 사람만 찾던 나의 눈과 마음이 더 다양한 세계를 볼 수 있도록 조금은 더 크고 넓어진 듯..
오빠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서 점심 먹자!” 한다. 내가 “집이 어딨나, 우리가?” 하면, ‘하늘 아래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시원하게 씻을 수 있는, 배 부르게 밥 해 먹을 수 있는 호스텔이 바로 우리 집’이란다. 하긴, 침대 하나 덜렁 놓여 있는 낡은 우리 방이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니 집 맞네, 집.
여행을 떠나기 전엔 자주 사용하지 않아 다소 생소했던 단어, ‘행복’. 낯선 이 곳에선 하늘 아래 우리방 한 칸, ‘침대가 푹신하면 행복하다’, ‘따뜻한 물이 잘 나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부엌이 있으면 금상첨화(외식비 아낄 수 있으니까)!’. 내 행복의 포부가 작아진 걸까? 아니, 아마도 내 행복의 크기가 넓고 커진 게 아닐까.
[나테한 세계여행]은 ‘나디아(정민아)’와 ‘테츠(오재철)’가 함께 떠나는 느리고 여유로운 세계여행 이야기입니다. (협찬 / 오라클피부과, 대광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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