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선진국들 마구잡이 돈 풀기로 신흥국 경제 '몸살'

입력 2013-01-25 10:19
양적완화와출구전략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선진국의 통화정책 완화기조가 바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재는 18일 열린 금융협의회에서 “금융위기가 더 악화한다고 보기 어려우며 양적완화 정책으로부터의 대응책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출구전략’을 처음 언급했다.

- 1월19일 한국경제신문

☞ 선진국들의 무차별적 돈 풀기로 신흥국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도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 통화완화 정책의 큰 피해국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선진국들의 양적완화 정책은 정책을 실시할 때는 물론 정책을 종료할 때도 다른 나라들의 경제를 교란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양적완화 정책(Quantitative easing)은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 돈을 찍어내 시중에 직접 공급하는 정책을 뜻한다. 기준금리가 제로 금리에 근접해 기준금리 인하만으로는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때 사용된다. 시중 통화량이 늘어나면 소비나 투자를 부추길 수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벌써 세 차례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일본도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이후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무제한 돈 풀기를 선언했다.

양적완화 정책은 다른 나라 경제에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영향을 미친다. 첫째는 통화가치의 변화다.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나 투자대상을 좇아 신흥국 등으로 물밀 듯 흘러들어가면서 해당 국의 통화가치를 끌어올린다(환율 하락). 반면 선진국 통화가치는 통화 공급 확대로 약세를 띠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신흥국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은 떨어지고 반대로 선진국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은 높아진다. 아베 정부의 무차별적 엔화 풀기로 엔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해외 시장에서 한국산 상품을 위협하고, 한국 관광 일본인들이 급감한 게 그 대표적 사례다. 자국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춰 이웃나라가 거지가 되든 말든 자기 나라만 살고보자는 전략이다.

둘째는 신흥국에 유입된 선진국 자금은 신흥국 자산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나라경제를 교란시킬 수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에 외국의 뭉칫돈이 드나듦으로써 시장의 변동성을 높이는 것이다.

특히 양적완화 정책이 종료돼 외국 자본이 신흥국에서 한꺼번에 빠져나갈 경우 신흥국으로선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외국 자본의 유입이 갑자기 멈추고 거꾸로 대규모 유출로 돌아서는 순간을 ‘서든 스톱’(sudden stop)이라고 한다. ‘서든 스톱’은 외환보유액 등이 충분치 않을 경우 한 나라 경제를 위기에 빠트릴 수도 있다. 실제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일제히 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국내 금융시장은 극심한 달러 고갈로 위기 직전까지 몰린 적이 있다.

외국인들의 한국 증시 투자는 지난해 12월 말 현재 상장 주식 411조6000억원, 상장 채권 91조원 등 총 502조6000억원에 달하고 있다. 선진국의 양적완화 종료로 선진국들의 투자환경이 좋아져 이 자금 중 일부만 빠져나가더라도 우리 경제는 독감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김중수 한은 총재가 선진국 양적완화에 따른 대비책(출구전략)이 필요하다고 시사한 것은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원화가치 급등을 우려하는 지금과는 정반대로 조만간 급격한 외화유출 사태가 올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정부와 한은은 지난해부터 선물환포지션 제도,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 부담금 부과 등 이른바 ‘외환건전성 3종세트’ 강화 조치와 함께 추가적인 외국인 자금 유출입 규제 대책을 검토해 왔으나 아직 구체적 방안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엔화 약세는 우리 경제의 치명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원화 가치 안정을 위한 정부의 조치가 시급한 시점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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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형 펀드, 한국 주식 대량 매도 이유는?

'뱅가드 쇼크'와 벤치마크지수

세계 자산운용업계 2위인 미국 뱅가드 그룹이 오는 6월까지 한국 증시에서 100억달러 가까운 주식을 팔 것으로 전망됐다. 뱅가드는 올해부터 자사 펀드의 벤치마크지수를 종전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에서 FTSE지수로 변경, 6개월에 걸쳐 단계적으로 실행한다. - 1월22일 연합뉴스

☞ 연초부터 국내 증시에 대형 악재가 터졌다. 한국 주식을 대거 내다팔겠다는 뱅가드 그룹의 발표가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뱅가드 그룹은 왜 갑자기 한국 주식을 파는 것일까? 여기엔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아 전문적으로 투자를 대행해주는 자산운용사의 자산운용 기준이 연관돼 있다.

뱅가드 그룹은 인덱스 펀드를 창시한 존 보글이라는 전설적인 투자 대가(大家)가 1975년 설립했다. 인덱스 펀드란 코스피지수처럼 특정 지수(벤치마크 지수)의 움직임에 맞춰 수익률이 결정되도록 설계된 펀드다. 가령 코스피지수가 올 한 해 8% 올랐다면 코스피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펀드의 수익률도 8% 안팎이 된다. 지수가 4% 떨어졌다면 펀드 수익률도 마이너스 4%가량이다.

존 보글은 ‘리스크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영원한 호황도 불황도 없다’ ‘정도를 지켜라. 투자의 유일한 비밀은 비밀이 없다는 것이다’ 등 유명한 투자철학을 남겼다. 그는 특히 매매비용을 최소화하는 게 투자 수익을 높이는 비결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자금을 맡기면서 투자를 대행해주는 대가로 내야 하는 수수료가 다른 펀드보다 싼 인덱스 펀드를 만들어내고 그 찬양자가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장기 투자할 경우 수수료가 싼 인덱스 펀드의 비용절감 효과는 시간이 흐르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된다.

뱅가드가 펀드의 벤치마크지수를 MSCI지수에서 FTSE지수로 변경한 것도 수수료 때문이다. 투자자가 펀드에 돈을 맡기면서 수수료를 내야 하는 것처럼 뱅가드 같은 자산운용사도 벤치마크지수를 사용하면서 이 지수를 산출하고 발표하는 회사에 이용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 MSCI보다 FTSE의 이용료가 훨씬 싸다.

MSCI와 FTSE는 세계 증시의 양대 벤치마크지수다. 벤치마크(Benchmark)란 ‘기준이 되는 점, 측정기준’이다. 벤치마크지수란 펀드의 수익률을 비교하는 ‘기준 수익률’로 투자성과를 비교하기 위한 비교지수다. 예를 들어 지난해 펀드 수익률 10%를 올렸다 하더라도 지난해 코스피지수가 17% 상승했다면 펀드 운용 성적은 나쁜 것으로 볼 수 있다. 펀드를 구성할 때 어떤 지수를 벤치마크로 삼는다면 자연히 그 펀드는 그 지수의 산출 대상이 되는 종목(주식)을 사서 편입하게 된다.

문제는 한국 증시가 MSCI에선 신흥국(이머징마켓, EM) 증시로 분류돼 있는 반면 FTSE에선 선진국 증시로 분류돼 있다는 점이다.뱅가드 펀드의 총 운용 규모는 1700억달러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이가운데 1000억달러가 선진국 지수를 추종하고 나머지 700억달러가 신흥국 지수를 추종한다. 한국은 신흥국에서 약 17%, 선진국에서 약 2%의 비중을 차지한다. 현재 뱅가드는 한국에 119억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추산된다. 벤치마크지수 변경으로 신흥국 펀드에서 119억달러 규모의 주식을 팔아야 한다. 대신 선진국 추종 펀드 1000억달러에서 20억달러어치의 한국 주식을 사게 된다. 순매도 금액이 100억달러 가까이 되는 셈이다. 뱅가드는 7월3일까지 25주간 매주 4%(금액 기준)씩 주식을 판다는 일정표도 내놨다.

우리 증시가 선진국 대접을 받는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대형 펀드의 갑작스런 대규모 주식 매도는 나라 경제에 충격을 줄 가능성도 있어 증권당국으로선 추이를 면밀히 살피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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