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주택거래 숨통 터줘야 내수가 산다

입력 2013-01-17 16:58
수정 2013-01-17 22:09
부동산 침체 '유동성 함정' 초래…돈맥경화, 금융회사 부실 우려도
시장안정 통해 중산층에 활력을

김종훈 <건설산업비전포럼 공동대표·한미글로벌 회장 jhkim@hamglobal.com>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촉발된 ‘아랍의 봄’이 이집트, 예멘, 리비아 등지로 확산될 때, 거리로 나선 대중의 불만 중 하나가 주거 문제였다. 이들 국가에서는 주택공급량이 인구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주택 가격이 치솟아, 중산층이나 저소득층은 주택을 구입할 엄두를 낼 수도 없었다.

이슬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아랍의 봄이 확산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요양 중이던 미국에서 급거 귀국한 사우디 왕이 민심수습 정책을 발표하자 국민들의 동요가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정책의 핵심은, 앞으로 5년에 걸쳐 667억달러(74조원)를 들여 중·저가 주택 50만가구를 공급하겠으며 계획 수행을 위해 기존 ‘주택청’을 ‘주택부’로 승격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부동산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하우스 푸어’와 ‘렌트 푸어’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하우스 푸어는 전 재산을 털고 대출까지 받아 주택을 구입했지만, 시세 차익은커녕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사라지고, 매매 수요가 전세로 몰리면서 천정부지로 오르는 전셋값에 소득의 대부분을 지출하거나, 차입에 의존해야 하는 렌트 푸어들의 삶도 팍팍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 대부분은 외형상으로 소비활동의 주역인 중산층이지만, 실질 구매력이 떨어져 ‘돈맥 경화’의 원인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가계소득 감소나 실직 등으로 인해 대출이 부실화될 경우 곧 금융회사 부실이라는 뇌관으로 불이 옮겨 붙게 된다. 유동성 함정에 빠져있는 우리 경제를 살리고, 내수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소비의 주역인 중산층이 살아나야 하고, 중산층을 살리기 위해서는 주택거래의 숨통을 터 주어야 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하우스 푸어’ 구제 대책으로 ‘보유주택 지분매각제도’ 도입을 공약한 바 있다. 하우스 푸어들이 자기 집의 지분 일부를 지정된 공공기관에 매각하고, 그 매각대금으로 은행 대출금 일부를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분을 매입한 공공기관은 그 지분을 담보로 금융회사, 연기금 등을 대상으로 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해 자금을 마련하고, 하우스 푸어로부터 매입지분에 대한 임대료를 받아 투자자들에 대한 이자 등 운영비로 충당하게 된다.

‘렌트 푸어’를 위한 공약은 ‘행복주택’과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가 핵심이다. 행복주택은 철도부지 위에 인공대지를 조성, 주택 20만가구를 시세의 절반 값에 제공하겠다는 것이고,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는 대출은 집주인이 받고, 세입자는 그 이자를 부담하도록 하겠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이런 공약들은 고육지책의 성격이 강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실제 효과를 거두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주택 문제를 포함한 부동산 정책은 건설산업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국가경제 전반에 걸쳐 상당한 파급효과를 미친다. 특히, 가계 총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70%에 육박하는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훨씬 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부동산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며 일관성과 지속성이 결여됐고, 국민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또 부동산 시장은 거의 국민 모두가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이해 당사자이자, 시장 참여자이다 보니 ‘승자와 패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지속적인 불협화음을 야기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와중에도 시장은 변화를 거듭해, 국내 주택문제는 단순한 공급 확대만으로는 시장수요 충족이나, 거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단계에 와 있다. 최근 인구와 가구 구성이 변하면서 실버주택, 땅콩주택, 소형주택 등 주택 수요 형태가 점점 다양화, 세분화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량 공급과 개발 위주에서 벗어나 주거복지 쪽으로 주택정책의 큰 틀을 바꾸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올바른 주택정책의 실행을 통해 시장의 신뢰와 정책의 연속성을 담보하고 시장의 안정화를 통한 국민 주거복지 향상을 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종훈 <건설산업비전포럼 공동대표·한미글로벌 회장 jhkim@hamglob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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