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난·구직난 얽힌 현실의 모순…직업교육 배제한 과잉 교육열 탓
각자 좋아하는 일 찾도록 도와야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청년실업? 그 소리만 들으면 화가 납니다!”
일전에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대상의 강연회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강연 말미에 한 CEO가 한 말씀인즉, “요즘 청년실업이 사회문제라 떠들어대지만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버젓한 대졸 신입사원 채용, 꿈도 못 꾼다”는 거다. 일자리를 구하는 이들은 구직난을 호소하고 사람을 찾는 이들은 구인난을 호소하는 현실의 모순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악화일로에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청년실업이야 매우 복합적 요인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나타난 결과임이 분명하나, 대졸 취업 희망자의 ‘눈높이 문제’를 조금 더 심도있게 고민할 때란 생각이다.
실제로 서울에 있는 유명 사립대학의 경우, 졸업과 동시에 미취업자로 분류되는 군(群) 중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각종 국가고시 지망생이다. 이제 사법고시 지망생 숫자는 줄어들겠지만, 여전히 행정고시, 임용고시, 언론고시에 회계사, 변리사까지 안정성이 보장되거나 고수익이 기대되는 직업을 얻기 위해 재수 삼수를 불사하는 졸업생 비율이 매우 높다.
최근 한 사립대학에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향후 진로 계획을 물은 결과 4명 중 1명이 해외유학을 원한다 답했고, 5명 중 1명은 대학원 진학을, 10명 중 1~2명은 고시에 도전해보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희망한다는 학생은 4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다시 이들의 진로 계획을 물어본 결과 취업을 하고 싶다는 비율이 10명 중 6~7명 정도로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우리네 대학생들은 재학시절 자신이 막연히 품어왔던 꿈들이 실상 환상이요 공상이거나 망상이었음을 깨닫곤 이를 서서히 포기해가는 과정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대학 졸업 이후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고민하는 졸업생 비율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이들은 처음엔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는 듯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도대체 자신은 누구인지’ 정체성을 둘러싸고 심각하기 그지없는 고민에 빠져들고 만다. 이런 경우의 대부분은 자녀의 인생을 진두지휘해온 부모들의 과잉 교육열이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기로 마음먹은 경우도 현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우울하기만 하다. “요즘 대학생들은 TV 광고에 나오는 기업만 존재하는 줄 안다”거나 “근무지가 지방이라 하면 대기업이라고 해도 기피한다”거나 “본인은 어디라도 취직을 하려 하는데, 대기업 아니면 부모님이 극구 반대하셔서 취직을 못하고 있다”는 등 솔직히 믿고 싶지 않은 목소리들만 들려오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청년실업은 더 이상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닌 셈이요,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해결책을 모색하기엔 복잡다기한 문제가 얽혀있는 난공불락의 산임이 분명하다. 그런 만큼 청년실업 세대의 눈높이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보다 일찍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요, 대입설명회처럼 채용설명회도 학부형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궁여지책까지 모색해야 할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입 진학위주의 교육에 함몰돼 진로교육이 소외되고 주변화되고 있음은 청년들에겐 진정 불행한 일이다. 가능하다면 어린 시절부터 ‘일의 세계’가 얼마나 엄혹한 곳인지 그 실체를 정확히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 세상엔 얼마나 다종다양한 직업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지, 직업의 세계는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지도 알려주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이 무엇인지 열심히 찾아나서야 하고, 그 직업을 갖기 위해선 어떤 준비와 노력을 해야 하는지 또한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한다.
부모들도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일정부분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일부 직업을 둘러싼 허황된 거품을 걷어내고, 또 다른 일부 직업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바로잡음은 물론, 남보기에 그럴듯한 직업, 남에게 내세울 만한 직장을 자녀들에게 강요하거나 기대하기보다, 자녀들이 진정 좋아하고 잘 해서 즐길 수 있는 직업을 찾아나설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지원해주는 일, 오늘의 부모세대에게 주어진 과제란 생각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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