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간섭주의 경제학' 개척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아버지가 경제학자였고 어머니는 케임브리지 시장을 역임한 영국의 보수적 가정에서 태어났다. 런던 명문 공립대인 킹스칼리지에 입학한 그는 당대의 최고 엘리트로 구성된 ‘사도들(apostle)’이라는 사조직의 멤버였다. 그는 그런 조직에서 엘리트 의식과 지적 자부심을 키웠다. 정부의 계획과 규제로 번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엔 그런 배경이 적잖게 작용했다. 그가 성장하던 시기는 청교도적 도덕을 중시하는 빅토리아 시대였다.
청교도적 가정 출신의 케인스가 블룸즈버리 그룹(Bloomsbury Group)의 핵심 멤버였던 사실이 흥미롭다. 이는 독립심, 절약 정신 등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그 대신에 쾌락적이고 현재를 중시하는 집단이었다. 케인스는 그런 도덕이 낡은 세대의 것이라고 비웃으며 그것을 멀리하려고 애썼다. 원래 도덕은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먼 장래를 다룬다. 그래서 도덕에 대한 비웃음은 순간적 쾌락의 중시와 미래의 경시를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이런 배경에서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케인스의 유명한 말이 생겨난 것이다.
우리가 이 명언에 주목하는 이유는 첫째로 케인스의 간섭주의 경제사상을 정당화하는 핵심 근거가 됐고, 둘째로 케인스 경제관의 핵심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죽기 때문에 단기적 성과에 치중하는 의사결정을 중시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시장경제 원칙의 효과는 장기간이 지나야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지킬 필요가 없다. 장기적인 재정건전성을 무시한 무상급식, 무상의료의 공급도 문제될 게 없다. 칸트류의 절대윤리도, 고전적 자유주의가 중시했던 원칙의 정치도 케인스에게는 시대착오적이다.
미모의 발레리나와 결혼했고 동성애도 즐겼던 케인스의 경제관을 또렷하게 말해주는 것은 소비가 선(善)이라는 그의 주장이다. 케인스는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기 때문에 저축한들 소용이 없고 소비가 중요하다는 믿음을 기초로 자본주의를 이해한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것은 결국 저축이 악(惡)이라는 뜻인데, 국민 전체의 소비가 충분하지 않으면 상품은 팔리지 않고 기업은 직원을 줄여 실업이 늘고 국민소득은 하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절약의 모순’이라는 멋진 말로 표현했다. 그러니까 돈이 생기면 바로 바로 쓰는 것이 고용을 늘리는 일이요, 애국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케인스는 그 모순을 너무 쉽게 인정한 나머지 저축이 늘어 소비수요가 줄어들면 자본재 생산, 즉 투자 증가가 가능하다는 것을 무시했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점은 일자리는 오로지 소비재 산업에서만 창출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일자리가 많은 산업 분야는 부품, 설비, 소재산업 등 소비재 시장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여러 단계의 자본재 시장이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고 저축의 모순이라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소비재 생산에서부터 자본재 생산단계, 원료채취 단계 등 일련의 길고 복잡한 생산단계를 설명하는 자본이론이 필요한데, 유감스럽게도 케인스에게는 그런 이론이 전혀 없다.
어쨌든 케인스는 자본주의가 전체 노동을 흡수할 만큼의 유효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에 실업과 불황이 필연이라고 진단하고 그 해법은 총수요(소비와 투자)를 관리할 정부의 강력한 힘이라고 역설한다. 민간 투자를 늘리기 위해 이자율을 내리고 소비성향이 강한 저소득층의 소비지출을 증대하기 위해 양육수당, 풍부한 복지급여 등 복지와 분배의 평등도 실현하라고 촉구했다. 균형예산을 지키지 말고 빚을 내서라도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케인스는 번영의 원천은 자유시장이 아니라 정부라고 확신했다.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그의 정부관이다. 그는 예산을 짜고 나라 돈을 쓰고 법을 만드는 정부 사람을 공공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그리고 지적으로도 탁월한 엘리트라고 믿었다.
정부는 판단이 뛰어나고 오류도 범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부를 그렇게 믿고 재량적인 권력을 허용할 경우 정부의 비대화로 기업과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이 침해되고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간과했다. 그래서 하이에크가 그의 사상을 ‘치명적 자만’이라고 말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마르크스의 학설에 치우친 케인스의 방법론이다. 그는 진정으로 경제현상을 설명하고 싶다면 총수요, 물가수준 등 총합변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거시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케인스는 그런 접근 방식의 결함을 인식하지 못했다. 시장 과정은 원래 개인의 행동에서 비롯되는데도 거시적인 접근은 행동하는 인간을 배제하고 그 대신에 총합변수(집단의 행동)를 수용한다. 그것은 각각의 개인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현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집단이 행동하는 인간인 것처럼 꾸며서 경제현상을 분석한다. 그래서 그 분석 결과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경제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물가수준이 아니라 가격구조이고, 총수요가 아니라 수요구조라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거시경제학은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정책적 기반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오늘날 경제학 교육을 대표하는 주류경제학이 되었다.
민경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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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 사상의 힘 - 1930년대 대공황때 뉴딜정책 기반 마련
대공황으로 미국은 장기간 20% 내외의 실업과 마이너스 10% 내외의 성장이라는 극심한 불황을 겪었고 독일 등 유럽에도 파급됐다. 이런 참혹한 경험을 한 인류는 구세주로 여길 만큼 케인스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그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미국, 영국, 독일 등 많은 국가들이 완전고용법 또는 경제안정법을 제정했다. 성장과 안정을 위한 우리나라 헌법 제119조 2항도 케인스의 영향이다. 루스벨트에서 닉슨에 이르기까지 모두 케인스의 넥타이를 맨 정치가들이었다.
케인스 사상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증거로 1930년대 대공황의 사례를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원인을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보면서 루스벨트는 케인스의 처방에 해당되는 뉴딜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공황은 유효수요의 부족에서 야기된 것이 아니라 방만한 통화팽창의 필연적 결과였다는 것, 그리고 뉴딜정책은 오히려 불황을 대공황으로 악화시켰다는 것이 신(新)경제사학의 확고한 인식이다.
세계의 이목(耳目)은 케인스에게 집중했지만 그의 사상은 기대만큼 성과가 없었다. 정부 지출만 늘리면 실업과 불황에서 경제를 살려낼 수 있다고 장담하던 그의 사상 때문에 1950년대 이후 유례없는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불가피한 실업을 겪어야 했다. 결국 1970년대 만연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그의 사상은 종지부를 찍었다. 케인스의 사상이 남겨놓은 것은 방만한 정부 지출로 인한 나라의 빚더미뿐이었다.
그의 사상의 치명적인 결함은 거시경제학의 방법 그 자체이다. 총합변수를 가지고는 경기변동의 원인을 알 수 없다. 단순히 정부지출의 증가가 고용을 증대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금융위기의 여파를 극복하기 위해 빚을 내서까지 정부지출을 늘렸지만 불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지출을 줄이고 규제를 개혁한 스웨덴, 독일, 스위스 그리고 에스토니아 등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했다.
흥미로운 것은 케인스의 경제학이 현실에서 과학의 논리를 갖추지 못했음에도 경제학자나 정부, 관료들이 매력을 느낀다는 점이다. 그것은 국가라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으리라는 그들의 믿음에 토대를 두고 있고, 또 거시변수는 측정 가능하며 그래서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실업과 인플레이션이다. 유감스럽지만, 케인스가 없었다면 경제학이 더 풍요로웠을 것이고 세계는 더욱 번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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