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신년기획] 50대 봉제공장 사장 "하루 15시간 일해도 먹고살기 빠듯"

입력 2013-01-01 17:09
수정 2013-01-02 02:04
월수입? 성수기땐 500만원·비수기땐 200만원
생활비? 월 250만원…문화생활 꿈도 못꿔
노후자금?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무슨…
소원요? 경기 살아나 일감 늘었으면…




구불구불 좁다란 서울 중구 만리동 골목길. 자동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한 골목 사이로 단독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조그마한 봉제공장이다. 각종 의류를 재봉질하고 단추를 달아 동대문 시장에 납품하는 곳들이다.

만리동에서 아내와 함께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박철우 씨(51)는 봉제만 26년차인 베테랑이다. 직원 세 명을 둔 어엿한 사장님이지만 인터뷰 내내 한숨을 쉬었다.

그는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일한다. “마누라까지 달라붙어 하루 종일 일해야 밥벌이를 하지요.” 그렇게 개미처럼 일해도 앞날이 안보인다고 했다. 박씨는 “노력한 만큼 수입이 많지 않아 희망을 갖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봉제 단가는 20년째 제자리다. 블라우스를 만들어 재래시장에 도매로 납품하면 한 장에 6000~7000원을 받는다. 이 중 3000~4000원은 ‘개공’(봉제공장 직원 몫)으로 주고 나머지를 봉제공장 사장이 갖는다. 사장은 월세와 재료비, 공장 운영비 등을 제외하고 나면 성수기 땐 월 500만원, 비수기 땐 200만원 정도 번다고 했다.

봉제업이 잘 되던 시절도 있었다. 열심히 하면 한 달에 1000만원도 벌었다. 그러나 중국 베트남 보따리상들이 절반 값에 도매 의류를 풀어댔고 중저가의 제조·유통 일괄의류브랜드(SPA)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일감은 점점 줄었다.

일감이 감소하면서 납품가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래도 일손은 늘 바쁘다. 박씨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만큼 꼼꼼하고 난이도 높은 봉제기술을 가진 나라가 없다”면서 “브랜드와 외국산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쉴 새없이 신상품을 내놓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에만 매달리다보니 아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 박씨는 친구들보다 늦게 결혼해 8살짜리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방과 후 컴퓨터학원과 태권도학원을 다닌다. 저녁은 학원에서 먹는다. 아들이 오후 8시쯤 돌아오면 박씨는 잠시 집으로 달려간다. 그제야 아들의 얼굴을 보며 씻기고 재운 뒤 다시 공장에 나와 일한다.

“아들이 어려서부터 순해 일찍 잠들어 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아들이 자다가 일어났는데,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알면 얼마나 무서울까 싶어 늘 불안하거든요.” 박씨의 눈자위가 금세 촉촉해졌다.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부부가 함께 일하는 만리동 봉제공장들은 대부분 같은 처지라고 했다. 박씨는 “새 대통령이 우리 같은 서민들을 위해 아이들을 늦게까지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설을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박씨 가족의 생활비는 월 250만원 정도다. 아들 학원비 50만원과 의식비, 통신비, 세 가족 보험료 등이다. 자기계발이나 문화 레저에 쓰는 돈은 거의 없다. 일반 직장인과 달리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항상 절약하는 습관이 배어 있다고 했다.

60대 이후에 대비해 노후자금은 마련해놓았느냐고 묻자 공장 한쪽에서 재봉틀을 돌리던 박씨의 아내가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무슨 노후자금이냐”고 말했다. 박씨는 “건강할 때 많이 벌어놓아야 할 텐데 봉제로 돈 벌기가 어려워 걱정”이라며 “배운 게 이것밖에 없으니 안 자고 안 놀고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공장 직원들은 형편이 어떻냐고 물어봤다. 봉제공장 직원들은 이 공장 저 공장을 수시로 옮겨다닌다고 했다. 블라우스 한 장 만드는 ‘개공’을 500원만 더 준다고 해도 금방 일터를 옮긴다. 그만큼 한 푼이 아쉽기 때문이라고 박씨는 전했다.

업무 환경이 열악하고 시간 대비 수입이 적다보니 젊은 사람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고 했다. 대부분 40~60대가 하루 종일 좁은 공장에 붙어 앉아 재봉틀을 돌린다. 공장 안에는 옷감에서 나온 먼지와 가느다란 털실들이 날려 곳곳에서 콜록콜록 기침소리가 났다.

박씨는 “이렇게 운영되는 소규모 봉제공장은 만리동 일대에 족히 수백 곳은 될 것”이라면서 “아무리 봉제업이 사양산업이라고 해도 여기서 우리 가족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먹고산다”고 말했다.

박씨는 인터뷰 말미에 “제발 경기가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민들이 사 입는 재래시장 의류는 경기에 상당히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박씨가 열심히 뛴 덕에 박씨 공장은 일할거리가 있지만, 한겨울에 일감이 없어 문닫은 봉제공장이 수두룩하단다. 박씨는 “올해는 동대문 시장에 활기가 좀 돌고 우리 공장도 돈이 많이 들어오라고 새해 소원을 빌어야겠다”며 웃었다.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줄 생각이 없느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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