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약속 추진땐 부작용 속출
중산층 늘리는 정책에 집중해야
집단이기주의 넘어선 대타협 필요
오정근 고려대 교수·경제학, 아시아금융학회장 ojunggun@korea.ac.kr
2013년 계사년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여망과 꿈을 안고 새 정부가 들어서는 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처럼 ‘모든 국민이 먹고 사는 것 걱정하지 않고 청년들은 즐겁게 출근하는 100% 행복한 나라’ ‘70% 국민이 중산층인 나라’에 대한 희망과 꿈을 안고 출발한다.
국민의 행복은 모든 민주국가 지도자들의 꿈이요 이상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행복하다고 하는 나라는 드문 게 현실이다. 국민을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에 대한 진단이 제각각이고, 진단을 올바르게 한 경우에도 처방이 틀리거나 효과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설상가상으로 이해당사자 그룹 간 집단이기주의 대립까지 가세하면 올바른 대책 추진은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이해당사자 그룹은 여야 정당, 사용자단체, 노동조합, 직능단체, 시민단체 등 다양하다. 이런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이해하고 타협하지 않는 한 문제해결은 어렵다. 1990년대 위기 때 스웨덴 독일이 노·사·정·여·야 대타협으로 위기의 고비를 넘긴 것이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학자들도 사상과 이념의 포로가 돼 진단과 처방을 잘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정 정당 편에 선 폴리페서들의 주장이 때때로 객관성을 잃어 위험해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가지되 진단과 처방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는 알프레드 마셜의 ‘따뜻한 가슴과 차가운 머리’ 권고를 다시금 되새겨볼 때다.
정치인들은 집권을 위해 온갖 장밋빛 구호를 외친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구호들이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 문제다. 결코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1990년대 중반 우루과이라운드 논쟁이 한창일 때 한국의 어느 대통령은 “농업을 보호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양보해도 좋다”는 주장을 폈다. 약자와 고향을 보호하고 식량안보도 지키고자 하는 얼마나 아름다운 주장인가.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농업에 280여 종의 보조금과 쌀 의무수입 등 연평균 10조~2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오늘날 농업은 보조금 없이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보호 없이는 생존도 어려운 실정이다. 농업보호 대가로 금융시장은 완전히 개방돼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는 선거 때 주장된 많은 공약들이 거침없이 추진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하다. 선거 때 마련된 공약들이 제대로 된 공청회나 세미나 등 검토를 거치고 결정된 것이 얼마나 되는가. 공약준수는 대국민 신뢰문제이기 때문에 추진하도록 노력하면서 한편으로는 현실여건, 파급영향, 재정 지속 가능성, 실효성 등을 하나하나 면밀히 따져서 우선순위를 정해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경제는 지금 벼랑 끝에서 마지막 희망의 끈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1992년 76%까지 올라갔던 중산층 비율이 2008년에는 66%까지 추락했다. 2009년 이후 다소 반등하긴 했지만 2011년 현재 68%에 머물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서민생활 사정이 이번 대선에서 좌파정권을 향한 표가 48%나 됐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1992년 이후 중산층이 붕괴된 데는 1963~91년의 연평균 9.5%의 고성장기를 마감하고 1992~2011년의 연평균 5.2% 중성장기로 주저앉아 그만큼 좋은 일자리가 줄어든 점이 근본적인 이유다. 문제는 최근 들어 성장률이 2011년 3.6%, 2012년 2% 내외 추정, 2013년 2% 후반 전망 등 3년 연속 2~3%대를 지속하고 있는 점이다. 유럽 재정위기 등 대외악재가 큰 요인이지만 대내적으로도 부채디플레이션 심화 등 한국 경제가 저성장기에 진입하고 있지는 않은지 면밀한 검토와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해 새 정부에서 성장률을 회복시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지 못하면 중산층 비율은 다시 낮아지고 좌파지지 기반이 확산되면서 한국 경제는 성장률 하락, 중산층 추락, 경제사회 혼란 가중의 악순환에 빠져들 가능성이 커진다. 더 이상 중산층이 붕괴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새 정부 5년은 사실상 한국 경제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경제학, 아시아금융학회장 ojunggu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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