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신년 인터뷰] 조윤제 교수 "새 정부 최우선 과제 '위기관리'"

입력 2013-01-01 16:37
수정 2013-01-02 02:56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난 정부와 무리한 차별화는 정책 선택 폭 좁혀
인수위, 경제민주화·중산층 확대 분명한 그림 그려야

재벌3·4세 경영능력 입증 안돼…지배구조 개선 필요
복지확대는 필수…정책효과 살피며 진행해야



“적극적 재정·통화정책을 통해 경기 급랭을 막으면서 원화 강세 추세도 적절하게 제어해야 합니다.”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새 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위기관리’를 제시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이번 위기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였다. 조 교수는 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향후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으려면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유산인 각종 불합리한 제도와 정부 운영 및 기업 경영 방식 등 사회 전반의 소프트웨어를 혁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터뷰는 서강대 국제대학원에 있는 조 교수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정부 역할 확대를 강조하는 배경은 무엇입니까.

“경기가 계속 위축되면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가계부채 문제가 악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금융시장에 심각한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팽창적 재정정책이 불가피합니다.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오르는 것도 막아야 합니다. 지난 15년간 소득분배 악화와 양극화는 제조업 고용이 줄어드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제조업에서 이탈한 인력이 비정규직이 되고, 영세 서비스업으로 흘러들어간 것이죠. 탈제조업화를 막지는 못해도 그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환율정책이 대단히 중요해졌습니다.”

▷새 정부의 중장기적인 과제는 무엇으로 보십니까.

“소프트웨어 개혁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우리 사회에 많은 혁신이 이뤄졌습니다. 정부 주도의 경제 운영, 이를 뒷받침하는 관료체제, 대기업 육성을 통한 산업화 정책 등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이런 방식은 지금 시대와 맞지 않습니다. 또 그 유산으로 담합과 유착이 아직 뿌리깊게 남아 있고 시장의 공정 경쟁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부분을 개선하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새 정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에 대해 평가하신다면.

“대체로 한국 경제가 요구하는 정책들이 대부분 들어가 있고 방향도 적절하게 설정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부 핵심 공약들은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큰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향후 재벌들의 기업 지배구조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정책이 없습니다. 중산층 확대를 어떻게 할지, 복지에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지도 모호합니다. 인수위원회가 제대로 정리해야 합니다.”

▷재벌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고도 성장기에는 기업의 수평적, 수직적 결합이 기업의 생존과 수출 확대에 도움이 됐습니다. 그러나 안정기로 접어들면서 이런 이점은 줄어들고 동반 부실화 등의 약점이 더욱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더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배구조를 더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순환출자는 규제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그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을 견인한 공도 큰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오너 경영 체제의 장점도 많습니다. 장기적 비전을 갖고 경영에 임할 수 있는 데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성과를 낼 수 있죠. 이건희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 같은 분들은 그 역할을 충분히 잘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재벌 중에 오너의 실책으로 쓰러진 곳들도 많습니다. 3세, 4세가 똑같이 잘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재벌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새 정부 초기에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게 있습니까.

“‘정치적 프레이밍’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 정부의 실패가 남겨준 교훈이기도 하죠.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중 종합부동산세를 빼고는 특별히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전 정부의 정책 모두를 좌파적 반기업적이라고 규정했어요. 그런 선에서 차별화를 시도하다 보니 선택할 수 있는 정책들이 편향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대기업 정책과 금산분리 완화 정도였죠. 그러나 국민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궤도 수정이 불가피했습니다. 스스로 규정한 정치적 프레임에 갇힌 꼴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신다면.

“예를 들어 성장에만 초점을 두다 보니 지나친 저금리 정책을 썼다는 점을 들 수 있어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원·달러 환율이 많이 올랐어요. 그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2%까지 내려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를 오랫동안 유지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금리와 원화 가치가 떨어져 대기업 경쟁력은 강해졌지만 물가가 오르고 가계부채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사실상 기업들은 수출 보조금을 받고, 서민들은 물가 부담을 지게 된 것이죠.”

▷성장과 복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성장이 최고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라고 했죠.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이런 등식은 성립하지 않고 있습니다. 새 정부는 개방과 경쟁을 촉진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양극화와 소득격차 확대 문제를 복지제도 확충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지 확대에 대한 속도 조절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복지제도 강화는 늦었지만 반드시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꺼번에 다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장단점을 분석하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책의 궁극적 효과도 살펴봐야 합니다. ”

▷박 당선인이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중소기업이라고 마냥 보호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구조조정을 촉진할 필요도 있습니다. 전통산업에서는 중국과 더 이상 경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퇴출과 진입이 원활해지도록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중산층을 70%로 늘리겠다는 박 당선인의 공약은 어떻게 보십니까.

“복지 정책은 원래 중산층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을 위한 방어적 대책입니다.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는 적극적 정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얘기죠. 공약에도 구체적인 대책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 전반적인 분배 시스템을 개선해야 합니다. 일자리 문제는 탈산업화 속도를 늦추고, 신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마련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분배 시스템 개선은 쉽지 않습니다. 과거 미국에서 자본주의 황금기로 불린 1970년대 미국 중위소득자와 최고경영자의 임금 격차는 213배였지만 지금은 이것이 300배로 늘었어요. 노동시장 내에 기득권도 문제입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규직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를 노동조합이 받아들이는 사회적 타협이 필요합니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면서 저성장 고착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추세를 되돌리기는 힘들지만 성장률 하락 속도는 조절해야 합니다. 일본처럼 일하지 않고, 소비도 하지 않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우선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 조정,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 제고를 통해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아야 합니다. 또 생산성 향상을 통해 저성장 구조를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건전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 경제활력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조윤제는 누구…노무현 前 대통령 경제교사로 활동

조윤제 교수(61)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서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다. 귀국 후 조세연구원 부원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자문관 등을 역임했다. 세계 경제 흐름에 대한 식견을 쌓은 뒤 정책과 행정도 두루 경험한 셈이다.

서강대 교수 시절이던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때 대통령 경제보좌관으로 임명됐다. 의외의 인사였다. 당시 많은 이들은 대통령과 코드가 맞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그랬다. 조 교수는 “초기 몇 달간 많이 부딪쳤다. 대통령이 역정을 낸 일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후 조 교수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고 한 보고서에 대해서는 “혼이 담겨 있다”는 칭찬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2005년에는 영국 대사로 나갔다. 외교관 생활을 한 후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복귀했다.

2009년 정치, 경제 개혁 제안서인 ‘한국의 권력구조와 경제정책’이라는 책을 펴내 주목받았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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