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2시간 일하고, 월 100만원 받는 우리는 근로자 아닌가요”···밥 먹을 여유조차 없는 드라마 제작 현장

입력 2019-08-14 18:05
수정 2019-09-04 10:06







“제작사는 왜 68시간 기준에서 식사 시간을 제외하자고 할까요?” (촬영보조)

“현장에 아침 8시에 집합했는데, 오후 2시가 넘어가도록 땡볕 아래서 식사도, 휴식도 없이 촬영하고있네요. 이러다가 막내들도 쓰러지겠어요.” (조연출)

“근로기준법상 8시간 이상 근로할 경우 1시간 이상 휴식시간 줘야합니다. 밥 안 먹고 밀어서(촬영해서) 일찍 끝내겠다는 건가요? ” (조명기사)

“수습이라는 이유로 한 달에 100만원 받았습니다. 연예인도 보고 카메라를 다룰 수 있다는 낙으로 새벽까지 일하고 장비 연습하며 다녔는데. 미술쪽 30, 50, 100만원 받는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촬영팀에서 100만원 받는 건처음 알았어요.” (드론촬영기사)

“신고하면 뭐합니까. 제작사들만 손해 보지. 감독들은 제작사가 손해를 보든 말든 자기들 욕심만 차리는데.” (미술팀)

[캠퍼스 잡앤조이=김지민 기자]드라마 제작 현장 스태프들의 목소리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드라마 하나를 제작하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일했는지 모를 정도로 몇 날 며칠 밤샘 촬영은 기본이다. 그렇다고 휴식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촬영 스케줄로 인해 식사시간은 물론 휴식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다. 여기에 불명확한 계약 관계로 인해 이른바 ‘자유계약자(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근로자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이는 산재보험을 기대할 수 없는 열악한 계약 조건, 혹은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는 체계의 부재 등과 같은 사례를 들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장시간 노동 등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드라마 제작 현장에 대해 수시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지난 7월, 그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2018년 3월부터 10월까지3개 드라마제작 현장에 대한근로감독을 실시했다. 해당드라마는△라디오 로맨스(KBS2 방영,얼반웍스·플러시스 미디어 제작)△그 남자 오수(OCN 방영,IMTV 제작)△크로스(tvN 방영,스튜디오드래곤·로고스필름 제작)다.당시 연장 근로제한 위반, 최저임금 미지급, 서면 근로 계약 미작성 등의 법 위반 사항 등이 드러났으며, 이에 고용노동부는 시정조치를 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현장스태프 177명 중 157명에 대해서는근로자로서 법적 지위를 처음으로 인정했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올 4월부터6월까지한국방송공사에서 방영 중인 4개 드라마 제작 현장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이는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 지부가 올 2월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 청원서를 제출한 데 따른 것으로, 4개 드라마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지앤지 프로덕션제작) △국민 여러분(몬스터 유니온 제작) △닥터 프리즈너(지담 제작) △왼손잡이 아내(팬 엔터테인먼트 제작) 등이다. 이번 근로감독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현장 스태프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했다. 또 지난해 실시한 근로감독 이후 현장 스태프들과 관련된 계약관계 변화 실태, 장시간 노동 등 노동조건 개선 상황 등을 중점적으로 점검했다.

이번 근로감독에서도 지난해와 같이 연장 근로제한 위반, 최저임금 위반, 서면 근로계약 미작성 등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됐다. 고용노동부는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됨에도 여전히 대부분 업무 위탁 계약을 체결하고 있어 서면 근로 계약을 작성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시정하도록 조치할 예정이다. 대부분의 제작 환경에서개선이 이뤄지기까지는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드라마 제작 현장 노동 실태 비교>


구분

2018년 1차 감독

(KBS2·OCN·tvN 방영3개 드라마)

2019년 2차 감독

(KBS2 방영 4개 드라마)

근로시간

-1일 평균 근로시간 15.2시간

-1주 평균 근무일수 5.6일

-1주 평균 연장 근로시간 28.5시간

-1일 평균 근로시간 12.2시간

-1주 평균 근무일수 3.5일

-1주 평균 연장 근로시간 14.1시간

개인 도급업자-스탭간 계약

대부분 구두 계약

대부분 서면 계약

(업무 위탁 계약, 근로 계약)




<제작사 및도급업체의주요 노동 관계법 위반 사항>

(연장 근로 제한 위반)8개소(특정 주에 1주 최대 33시간까지 연장 근로)

(최저임금 위반) 3개소(스태프 184명 중 3명에게 2백 2십여만 원 미지급)

(서면 근로 계약 미작성) 16개소(스태프 184명 중 128명에 대해 서면 근로계약 미작성)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계약…현장에서는 방송국 PD가 ‘갑’

드라마 제작 노동 환경을 이해하려면 제작 현장 구조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방송사를 정점으로 현장 스태프까지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이뤄진 특징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방송사→외주제작사→스태프’와 개별적인 업무위탁계약 또는 팀 단위 도급계약형태로 이뤄져 있다. 드라마 제작현장 스태프들이 체결하고 있는 계약은 개별적인 업무 위탁계약, 팀 단위의 도급계약, 근로계약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드라마 제작 현장 구조.

외주제작사는 크게 2가지 형태로 현장 스태프들과 계약을 체결한다. 첫 번째는 외주제작사와 현장 스태프가 직접 개별적으로 업무위탁계약(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하는 형태이며, 두 번째는 외주제작사와 팀장급 스태프가 팀 단위로 도급계약을 체결하는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외주제작사와 팀 단위로 도급계약을 체결한 팀장급 스태프는 다시 소속 팀원급 스태프와 업무위탁계약(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하거나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KBS2 드라마 <왜그래 풍상씨>와 <왼손잡이 아내>, SBS 드라마<사랑의 온도> 등을 제작한 드라마 제작사 팬 엔터테인먼트의 한 관계자는 “드라마 현장에서는 방송국에서 파견된 PD(연출자)가 거의 모든 것을 콘트롤 한다”라며, “근로시간이 잘 지켜지려면 현장 PD가 근로기준법에 대해 인지하고 지켜야한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긍정적 변화 있지만 근로자성 인정 여부 등잔재 남아있어

고용노동부는 현장 스태프들과 관련된 계약 관계에 있어 지난해에 비해 올해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현장 스태프들과 관련된 계약 관계가 팀 단위로 체결하는 도급계약에서 스태프와 직접 개별적으로 계약하는 형태로 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지난해 근로감독에서는 기술분야(조명·동시녹음·장비 등)의 경우 외주제작사와 팀장급 스태프간에 팀 단위로 도급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번 근로감독에서는 외주제작사가 스태프와 직접 개별적으로 업무위탁계약을 체결하는 형태로 계약관계가 변하고 있었다.

<드라마 제작 현장 계약 관계의 변화>


분야

2018년 근로감독

(KBS2·OCN·tvN 방영 3개 드라마)

2019년 근로감독

(KBS2 방영 4개 드라마)

연출·촬영 제작

외주 제작사가 스태프와 직접 개별적으로 업무 위탁 계약 체결

2018년과 같음

조명·장비 동시 녹음

외주 제작사가 팀장급 스태프와 도급 계약 체결

-수급인인 팀장급 스태프는 소속 팀원과 업무 위탁 계약 또는 근로 계약 체결

외주 제작사가 스태프와 직접 개별적으로 업무 위탁 계약 체결

-다만, 일부 현장에서는 2018년 근로 감독 시와 같이 도급 계약 유지





고용노동부는 또 외주 제작사와 팀원급 스태프들이 체결하는 계약은 형식적으로는 업무 위탁 계약(프리랜서 계약)이지만 감독 등 팀장급 스태프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는 등 사용 종속 관계에 있어 근로 계약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했다.다만,외주 제작사와 감독·프로듀서(PD) 등 팀장급 스태프들이 체결하는 계약은 팀장급 스태프들의 경우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본인 책임 아래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근로 계약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근로 감독 허술한 부분 있어…“발 빠른 노동환경 개선 안돼”

이러한 고용노동부의 드라마 제작현장 근로감독이 마냥 청신호라고 하기엔 어려운 점이 있어 보인다. 방송노동환경개선을 위한 시민단체‘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는 고용노동부가 지난해와 올해 실시한 근로감독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빠뜨렸다고 지적했다. 외주 제작사와 감독·프로듀서(PD) 등 팀장급 스태프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은 부분이다.

홍승범 한빛센터 사무처장은“팀장급 스태프들은제작 일정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총연출 감독의 스케줄에 따라서 움직여야 한다. 이에팀장급 스태프들도 근로자성이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팀장급 스태프들의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방송사나 외주 제작사에서 여러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 현장에서 근로시간이 초과되거나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책임의 소지가 팀장급 스태프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근로감독에 참여했던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는“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팀장급 스태프들과 개별면담 등을 진행했으며,대부분은 현장에서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고용보험근로계약서 작성을 원치 않는 사람도 많았다. 당시팀장급 스태프들은 임금이 꽤 센 편이었다.이 때문에 프리랜서를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움직임, 최적의 방안은?

6월 18일 드라마 제작 관련 단체들로 구성된 ‘지상파방송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공동협의체(KBS, MBC, SBS 등 지상파방송 3사와 언론노조,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지상파방송 드라마제작환경 가이드라인 기본사항’을 합의했다. 드라마 제작 스태프와 표준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이번 합의는 지상파방송 산별협약에 따라 언론노조와 지상파 3사가 ‘드라마제작환경개선특별협의체’를 구성한 지 6개월, 드라마제작사협회와 방송스태프지부까지 참여해 4자 간 협의체로 전환한 지 2개월 만에 끌어낸 결과다.

공동협의체는 이번에 합의한 기본 가이드라인에 따라 드라마 제작현장의 장시간노동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주 52시간제 시행에 대비해 노동시간 단축 상황을 점검하는 것은 물론, 스태프와 계약할 때는 드라마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를 적용하기로 했다. 또, 제작현장 내 스태프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드라마 제작 현장별로 ‘종사자협의체’를 설치해 운영하기로 했다. 방송사와 제작사 책임자, 스태프 대표자가 노동시간과 휴게시간, 산업안전 조치, 기타 근로조건에 대해 협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고용노동부는내년부터 제작 지원 사업을 선정 평가할 때 연장 근로제한 위반, 임금체불 등으로 고용노동부의 시정 조치를 받은 외주 제작사에 대해서는 감점 부여를 검토하는 등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외주 제작사와 스태프를 대상으로‘찾아가는 노무 교육 및 컨설팅’을 실시, 현장에서 노동 관계법이 지켜질 수 있도록 해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드라마 제작사 입장에서의 해결 방안은조금 다르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현재의 노동법을 모든 산업 분야의 근로자에 일률적으로 맞추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며,“드라마 제작은 제조사의컨베이어 벨트처럼일정하게 돌아가는 방식이 아니다.단기간에빠르게 진행되는드라마 콘텐츠 제작 산업 특성에맞춘 세부적인 노동법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홍승범 사무처장은“고용노동부에 많은 드라마 제작현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했지만, 드라마 제작현장의 특성상 단기간에 촬영이 끝나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라며,“고용노동부는 이러한드라마 제작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빠르게 움직여잘못된 부분을바로 잡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min503@hankyung.com

[자료 제공=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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