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틴잡앤조이 1618=박인혁 기자] 우리나라 고등학생에게 창업은 아직 하나의 진로로 인식되지 않는다. 성공 신화를 써낸 고졸 CEO도 있지만 재학 중이나 졸업 직후에 창업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직업계고에는 창업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열려 있다. 특성화고 창업 교육 담당 교사들에게 진로와 교육의 경계에 있는 학생 창업의 현주소에 대해 들었다.
△2018 서울학생-창업 토크콘서트 (사진 제공=동구마케팅고)
‘청년’이라는 단어에는 학력 구분이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청년 창업’하면 대학생 창업을 떠올린다. 이는 편견 때문이라기보다 대학생에 비해 고등학생 창업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 이유를 나이와 경험 부족으로 꼽는다. 하지만 취업과 마찬가지로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나이나 학력이 문제될 이유가 없다.
학교에 다니며 진로를 탐색해야 하는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서도 창업은 ‘스펙 쌓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대학교 부설 창업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구체적으로 창업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대학생들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물론 교육으로서의 창업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취업이나 진학을 선택한 학생들에게도 창업은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하지만 창업이 하나의 진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조금 더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창업 지도 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창업 체험의 시작, 동아리 활동
동아리는 고등학생이 창업을 가장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경로 중 하나다. 직업계고에서 비교적 동아리 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에 교내 창업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할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비즈쿨’, 서울시교육청 ‘서울학생창업동아리’, 한국과학창의재단 ‘메이커문화확산 동아리’ 등 활동을 지원하는 기관도 많다. 예산 규모도 비즈쿨 평균 1천300만 원, 메이커문화확산 동아리 350만 원 등 다양하다.
△기업가정신교육 수료식(사진 제공=동구마케팅고)
동구마케팅고에서 창업 지도를 맡고 있는 정광우 교사는 “아직까지 특성화고 창업은 걸음마 단계”라고 평가한다. 단순히 예산 지원만으로는 창업 마인드 교육 수준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특성화고에서 대학교처럼 자체적인 창업지원센터를 운영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창업을 꿈꾸는 특성화고 학생들을 위해 교육청 차원에서 공동 창업보육센터를 개설한다면 도움될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동구마케팅고 창업동아리 ‘Idea#’는 2016년부터 국민대와 창업 교육에 대한 MOU를 체결했다. ‘Idea#’ 동아리 부원들은 국민대 창업지원센터에서 매년 40시간 기업가정신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정 교사는 “동아리 학생 중에서 창업을 실행에 옮긴 학생은 아직 없다”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각종 서류 작성, 행정처리 문제, 예산 조달, 사무실 등의 문제에 부딪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의 좋은 아이디어를 창업과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뒷받침된다면 새로운 성과가 드러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창업 교육의 선순환이 될 학교기업
학교기업은 학생 주도의 기술 개발과 사업화, 수익 창출을 동시에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진 창업 교육의 일종이다. 학생들은 학교기업을 통해 사업에 참여해 제품을 생산하거나 입찰을 통해 용역을 수행한다.
△부산 G스타 게임쇼(사진 제공=서울디지텍고)
서울디지텍고 학교기업이 수주한 국가보훈처 VR(가상 현실) 시뮬레이션 제작 용역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학교 학생들은 3년 전부터 학교기업의 자격으로 국가보훈처의 입찰에 정식으로 참여해 게임 제작 및 3D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기획서 작성부터 경쟁 프레젠테이션 준비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해 국가보훈처의 입찰을 수주했다. 2017년 ‘민주’ 편, 2018년 ‘호국’ 편을 무사히 납품하고 올해 ‘보훈’편 제작에 대한 용역을 수행하고 있다. 수익은 장학금이나 학생들이 해외 연수에 참가하는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며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학교기업 및비즈쿨 창업 지도를 맡은 김도형 교사는 “학생들이 실제 용역을 수행하며 실무에 임하는 학교기업은 교육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며 “기획서를 작성해서 기관에 제출하고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수행하면서 학생들은 책임감과 협업 및 소통 능력이 높아진다”라고 말했다. 창업뿐 아니라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학교기업 활동은 좋은 경험이 된다는 것이 김 교사의 설명이다.
한편 김 교사는 “아직 확실한 선례가 없다 보니 졸업 직후 창업을 권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라며 “초등학교와 중학교 단계에서 창업을 접할 기회를 늘리고 성공 사례집을 만들어 공유한다면 창업을 하나의 진로로 권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직업계고 학생만 참가하는 창업대회
특정 분야에 대한 자신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위해서는 전국 단위 대회 출전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 창업과 관련 있는 공모전과 대회는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분야나 지역이 한정돼 있고 대학생이나 성인만 지원할 수 있는 대회도 많다. 고등학생을 위한 창업 대회는 한정돼 있다.
△창업대회 준비하는 패션디자인과 학생(사진 제공=아현산업정보학교)
교육부와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중앙회가 주최하는 ‘특성화고교생 사장되기 창업대회(Be the CEOs)’는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산업정보학교 등 직업계고 재학생 개인만이 참여할 수 있는 대회다. 직업계고 학생들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포상해 창업을 장려하기 위한 취지로 개최되며 올해 16회를 맞이했다. 물론 이 대회 참여 실적이나 수상이 창업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창업을 꿈꾸는 전국 직업계고 학생들이 참여하기에 창업 아이템에 대한 타당성과 현실성을 가늠하는 좋은 기회다.
아현산업정보학교는 올해 창업을 목표로 한 패션디자인과 학생들이 ‘특성화고교생 사장되기 창업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아현산업정보학교는 매년 초에 일반고 3학년을 모집해 전문직업교육 과정을 운영하기에 학생들의 목표와 꿈이 확실한 편이다. 특히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인터넷 쇼핑몰 등 창업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 결과 아현산업정보학교에서 10팀이 대회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이미란 담당 교사는 “창업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실현 가능성”이라며 “고교생 수준에서 자본이 많이 필요하거나 어려운 사업보다는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아이템이 실제 창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한다.
hyu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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