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이용하면 돼’, 배려 없는 도서관 이용 사례 빈번
‘이미 사용 중인 좌석입니다’
대학 도서관 열람실을 이용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알림 메시지이다. 열람실 내 좌석배정시스템으로 좌석을 찾을 때 이미 예약된 좌석을 누르면 나타나는 알림이지만 해당 좌석을 가보면 앉아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용 시간이 지난 빈자리에 개인 물품과 교재가 쌓여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A 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 씨는 올해 학기 초부터 자격증 공부를 위해 도서관 열람실을 다니고 있다. 김 씨는 “책이랑 옷은 있는데 사람은 없는 자리가 평소에도 종종 보인다. 잠깐 자리를 비우는 건 이해되는데 이용 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 건 이해가 안 간다”라 고 말했다. 이어 “자리를 예약했는데 모르는 사람의 짐이나 옷이 놓여 있어 당황한 적도 있다”며 “처리하기가 난감해 빈자리에 밀어놓았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라고 토로했다. 도서관 좌석을 예약해놓고 자리를 비워두는 일명 ‘좌석의 사유화’ 현상은 대학 도서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대학 도서관에는 학생들의 열람실 이용을 위해 일정 시간을 기준으로 예약할 수 있는 키오스크가 마련돼 있다. 학생들은 좌석배정시스템이나 도서관 앱을 통해 원하는 좌석을 필요에 따라 예약하거나 연장, 취소할 수 있다. 특히 학생들의 원활한 도서관 이용을 위해 각 대학교는 도서관자치위원회(이하 도자위)를 운영하며 필요한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도자위는 일정 시간을 기준으로 관리자의 순찰을 통해 준수사항을 위반하는 학생을 제재하거나 패널티를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대학 도서관좌석배정시스템 기계.
그렇지만 열람실 좌석의 사유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일부 대학의 도자위에선 단속 강도를 높이거나 고육책을 마련하지만 순찰 시간 외 발생하는 문제나 자리를 비우는 학생들의 이해타산을 모두 고려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건국대학교 도자위 관계자는 “짐이 있는 미등록 자리엔 경고카드를 두고 다음 순번의 근무자가 발견 시 이를 사석화로 판단해 짐을 회수한다”며 “하지만 학생들과 가끔 다툼이 생길 때도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짐을 회수해도 한참 뒤 찾아가거나 찾아가질 않아 폐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도서관 문제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도서관을 출입하고 열람실 좌석을 예약할 수 있는 학생증만 있다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기에 본인 확인이 느슨한 대학의 경우 대여를 통해서도 손쉽게 타인의 이용이 가능하다. 또한 친구의 학생증을 빌려 자신이 이용할 자리를 추가로 확보할 수도 있다. 열람실 좌석 시스템을 악용할 수 있는 방법은 이외에도 다양해 대학 도서관 측은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대학 도서관 내 좌석 사유화 문제가 학생들은 물론 학교 차원의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는 이예림(한양대 산업디자인학·23)씨는 학생들의 미성숙한 인식과 배려 문제를 언급하며 날 선 비판을 제기했다. 이 씨는 “전공 특성상 노트북 작업이 많은데 칸막이가 없는 노트북 열람실에선 친구 학생증으로 옆자리까지 예약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시험이나 팀플 기간에 정말 난처하다”며 좌석을 이용하고 싶어도 못하는 다른 학생들의 문제를 고려해줄 수 있는 도서관 시스템이나 운영 방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건국대학교 도자위 위원장 박동주(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25)씨는 좌석 사석화 문제를 줄이기 위해 기존의 방식을 바꾸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23시까지만 운영되던 좌석배정시스템을 학교 측과 상의해 24시간 배정으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건국대는 23시 이후엔 예약 없이 자유석으로 이용되던 열람실에서 사석화 제보가 계속 늘어나자 대책을 마련한 셈이다. 이어 그는 “순찰을 돌지 않을 때 발생하는 좌석 문제에 대해서는 플러스친구 신고 제도를 이용해 학우 분들이 건의 주신 사항에 대해 즉각 조치를 취하는 방향으로 하고 있다”며 향후에도 단속을 강화하고 신고 제도를 더 홍보할 것이라 밝혔다.
성균관대학교 도자위 위원장 서보현(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22)씨는 사석화 문제 해결을 위해 전산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리를 빨리 비울 때 반납을 하지 않는 학생들의 문제를 지적한 서 씨는 “자리가 비어도 반납 시간을 몰라 다른 학우가 자리를 못 잡는 경우가 있다”며 “해결책으로 발권기 화면에 각 좌석마다 남은 시간을 표시하는 방법을 생각했으나 전산 쪽의 문제라 도자위 주체 하에 해결할 수 없는 점이 아쉽다”고 전했다.
△성균관대 도자위 페이스북 페이지 커버사진.
이에 대해 명지대학교 도서관 전산담당자는 설정된 프로그램 시간측정값에 따라 사석화 여부를 구분한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프로그램 상 설정된 값에 따라 제재를 가한다. 기준은 출입 게이트로서 학생이 출입하는 순간 시간 체크가 되어 외출한 시간이 설정된 시간을 초과하면 제재가 생성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출입게이트가 없을 경우 비콘으로 신호를 주고받지만 학교마다 시스템이 다르고 학생들이 모르는 시스템이 있어 좌석 사석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일부 학생들의 경우 도서관 이용은 학생 개인의 권한이라며 반대되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학생은 “도서관 이용은 엄연히 등록금에 포함된 학생이 누릴 수 있는 복지인데, 사정이 생겨 자리를 비울 수도 있는데 문제 삼는 건 과한 처사”라는 반응을 보이며 학교 측과 시각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khm@hankyung.com
[사진=이창호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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