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스타트업 탐방]중앙대 박제환 ‘루미르’ 대표
△박제환 루미르 대표를 그의 회사가 입주한 서울 성동구성수IT종합센터에서 만났다. 그의 옆에 나란히 자리한 제품은 왼쪽부터 루미르S(왼쪽 두 개), 루미르K, 루미르C. 사진=이승재 기자
박제환
1988년생
중앙대 전자전기공학부
2014년 12월 루미르 법인설립
[캠퍼스 잡앤조이=이도희 기자] 루미르대표 라인업 중 하나인 루미르K의연료는 다름 아닌 폐식용유다. 대학 4학년 박제환(30)대표는 이 LED 램프로 정전이 일상인 인도네시아의 오지마을을 밝히고 있다.
루미르는 C부터루미르K, S까지 세 개 버전으로 진화했다. 첫 버전인 루미르C는 양초를 이용한 램프다. 초의 열을 작은 금속을 이용해 전기에너지로 변환해 빛을 내는데 밝기가 양초만 켰을 때보다 무려 60배나 늘어난다. 또 양초는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단점이 있는데 이 역시 루미르만의 기술로 해결했다.
루미르K는 개발도상국을 타깃으로 한 저가 제품이다. 열을 전기로 바꾸는 원리는 똑같지만 원료가 다르다. 현지의 필수품이자 값싼 식용유를 이용한 것.
대중성을 살려 최근에는 루미르S를 추가 출시했다. 일반 콘센트나 보조배터리에 꽂아 쓰는 간편한 램프다. 지난해 말, 이 제품은 네이버 해피빈 크라우드 펀딩에서 마감도 전에 2500여만 원어치 선 판매를 기록하며 목표치의 500%를 달성했다.
‘촛불 램프’로 미국서 1억6000만원 선판매 달성
박제환 대표는 타고난 창업맨은 아니다. 오히려 여느 대학생처럼 그에겐 당장 취업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2014년, 친구와 떠난 인도 여행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저녁에 시내의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일대가 정전이 된 것. 그런데 가게 주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발전기를 꺼내 돌리거나 호롱불을 켰고 손님들 역시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의연했다. 이 모습이 박 대표에게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모두가 정전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사실이 안타까웠어요. 도와줄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마침 제 전공인 전자공학 지식을 살려보기로 했죠. 현지에도 태양광 램프가 있지만 기후나 여러 특성상 보편성이 떨어졌거든요.”
하지만 당장 이렇다 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빛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로 한 박 대표는 UPS같은 소켓부터 차근차근 개발하기 시작했다. 전기를 모아뒀다가 정전이 됐을 때 자동으로 켜지는 형태다. 이 아이템으로 그는 교내 교양강좌인 ‘캠퍼스CEO’ 프로그램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서울시 연합 창업대회에서도 연이어 대상을 받았다. 10여 군데 대회에 출전해 무려 8곳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2억여 원의 자금을 모았다. 더 나은 기술을 찾기 위해 재능기부 사이트도 뒤졌다. 개발자들의 모임을 찾아다니면서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켰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루미르S. 전기 대신 양초를 이용한 LED램프였다.2015년 초 개발에 돌입해 1년 만에 마침내 시제품을 출시했다. 이후 미국 크라우드 펀딩 채널인 킥스타터(Kick Starter)에서 첫 선을 보였고 6개월의 정식 양산 기간을 거쳐 7월에 첫 배송을 시작했다.
그가 국내도, 당초 목표였던 개도국도 아닌 미국을 첫 시장으로 선택한 데는 나름의 계기가 있었다. 시장 조사 차 미국 뉴욕의 ‘나우’와 한국의 ‘메가쇼’ 두 박람회를 방문했는데 여기에서 테라스 문화에 익숙한 미국을 공략해 보라는 조언을 얻은 것. 또 미국은 양초 사용량도 많고 사회적 가치에도 관심이 많기에 루미르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장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펀딩에서 총 1천 명의 선 구매를 끌어내며 무려 1억 6천만 원을 벌어 들였다.
“이게 첫 단추가 돼 여러 바이어로부터 추가 거래 제안이 왔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어요. 더 좋은 기회, 더 좋은 조건을 기다리느라 이들 제안을 모두 마다한 거예요. 적절한 선에서 거래하는 법을 몰랐던 거죠.”
또 일부 소비자가 받침대를 추가로 요구하면서 급히 제작했는데, 이게 초의 열기에 녹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는 손해를 감수하고 곧바로 전량을 리콜 조치했다. 또 한 번의 뼈아픈 실책이었다. 그러나 이들 경험은 루미르를 더욱 단단하게 해줬다. 박 대표는 얼마 안가 일본의 ‘마코아케’라는 펀딩 채널을 통해 3천만 원을 추가로 모았다. 일본은 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많아 재난용품으로 비상용 랜턴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제품이 현지의 한 언론에도 소개되면서 판매량도 급증했다.
△최근 새롭게출시한 루미르S 제품사진. 사진=루미르
“좋은 뜻 가진 정부와 기업 통해 대량 공급하고 싶어요”
100%의 성공은 아니었다. 루미르C로는 개도국을 도울 수 없었다. 도저히 생산단가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생활이 빠듯한 주민들이 양초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 마침 코이카의 기술기반 청년 스타트업을 통한 개발 지원사업인 CTS 프로그램 개최 소식을 접한 박 대표는 이를 통해 그의 숙원사업을 이루고 싶었다. 다시 고민에 빠진 그는 문득 폐식용유를 떠올렸다. 식용유는 인도네시아의 7대 필수품이다. 인도네시아는 워낙 날이 더워 음식을 늘 튀겨먹기 때문에 슈퍼마켓에서 어떤 제품에든 식용유를 끼워서 팔정도다. 1리터에 800원 정도로 가격도 저렴하다. 마침내 2016년 12월 말, 루미르는 사업 파트너로 선정되며 인도네시아의 고효율 열전발전 램프 개발 및 보급사업을 맡게 됐다.
“인도네시아는 군도국가라 발전소에서 나온 전력이 사방의 섬으로 흩어져 버려요. 전기 보급률이 절반 수준밖에 안 되죠. 또 오지 외에 수도인 자카르타는 소득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 루미르C와 K를 모두 공급할 수 있으니 물류비 절약도 가능해요.”
△루미르가 제공한 루미르K가 인도네시아 아이들의 밤을 밝히고 있다. 사진=루미르
박 대표는 곧바로 현지 테스트에 돌입했다. 인도네시아인 2명을 채용해 무려 9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제품을 검증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수집했다. 그러나 비용만큼은 도저히 좁혀지지 않았다. 대안으로 박 대표는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와 거래하는 국내 기업의 사회적공헌활동(CSR) 지원금을 활용하기로 했다. 다행히 마침 뜻을 모아준 GS글로벌의 인도네시아 지사로부터 현지의 주요 광산업체를 소개받았고 덕분에 루미르K가 1월 중 현지에 처음으로 대량 유통된다.
단가를 더욱 낮추기 위해 올해는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을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 중이다. 올 5월에는 ‘루미르B’라는 새로운 디자인 전구 신제품도 출시할 예정이다.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이 제품은 조만간 인도네시아의 사회적 기업을 통해 제작할 예정이다. 이는 현지 ‘일자리창출’ 효과도 가져온다.
박 대표는 올해는 개발자가 아닌 진정한 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과거 1~2년은 ‘조금 더 밝게, 조금 더 실용적이게’라는 ‘공대생 마인드’에 빠져 있었다면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에게 루미르를 보급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다는 것. 선진국형 제품으로도 사회적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방식도 고민 중이다.
“최근 정부도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기 위해 적극 투자하고 있잖아요. 저희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봐요. 그래서 궁극적으로 ‘좋은 조명 브랜드’가 꼭 외국의 명품이 아닌 ‘착한 브랜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습니다.”
tuxi0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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