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두번 퇴사하고 여행작가 변신…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 대신 열정 찾았죠”

입력 2017-11-17 09:57
수정 2017-11-20 09:58

[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 여행작가는 많은 이들의 로망이다. 좋아하는 여행 실컷하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막상 도전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어른이 되면 ‘자유’보다는 ‘안정’적인 삶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서진영 작가는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을 퇴사하고, ‘여행작가’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서진영(34) 작가는 새내기 여행작가다. 지난 7월 첫 책 ‘이지 시베리아 횡단열차(공저)’를 펴냈고 9월에는 ‘트립풀 블라디보스톡’을 출간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러시아어를 전공한 내공을 살려 러시아 전문 작가로 활동 중이다. 스스로 지은 별명도 ‘러시아를 사랑하는 모험소녀’다.



△ (사진 = 서범세 기자)



외고, 명문대, 공기업 입사… FM 모범생의 일탈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러시아와의 인연이 시작됐어요. 외고에 진학해 러시아어를 전공했거든요. 사실 원해서였다기보다, 성적 때문에 5지망으로 썼던 러시아어과에 가게 된 거예요. 생소한 언어라 걱정을 했는데, 오히려 새로워서 더 재미있고 신기했어요. 그때부터 러시아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됐고, 대학 전공도 노어노문학과로 선택했죠.”

그야말로 ‘FM 모범생’의 길을 걸었다. 외고 졸업 후 연세대 노어노문학과에 진학했고, 휴학 한 번 없이 대학 4학년 때 공기업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입사했다. 러시아어 전공자 채용에 지원해 입사한 만큼 전공을 살릴 기회가 많아 재미있게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은 생각만큼 즐겁지 않았다.

“입사 후 바로 러시아권 일을 담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해당 국가에 파견을 나갈 때만 언어를 사용하고 국내에 있을 때는 일반적인 부서에 배치돼 업무를 하거든요. 저도 3년 정도 러시아 파견을 가 있는 시간 외에는 국내에서 전시 기획, 해외 채용 직원 관리 등 일반적인 업무를 담당했죠. 조금 아쉽더라고요. 언어는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잊게 되는데, 쓸 일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기대만큼 즐겁지 않았던 회사 생활에 서 작가는 따분함을 느꼈다. 오랫동안 배운 전공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것도 아쉬웠다. 잠깐 휴식기를 가지며 러시아어 공부를 좀 더 해보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 작가는 입사 7년차,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와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하다 공부, 그것도 노어노문학이란 순수학문을 하려니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이게 맞는 길인가’ 싶기도 하고, ‘졸업 후에는 어떻게 살지’라는 고민으로 답답해졌다. 답을 찾기 위해 대학 때도 안했던 휴학을 대학원 재학 중 했을 정도다.

휴학 후 방황하던 그에게 기다렸다는 듯 전 직장에서 재입사 권유를 해왔다. 마침 회사 차원에서 퇴사자를 대상으로 재입사 의사가 있을 경우 다시 일할 기회를 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 작가는 기회를 덥석 잡았고 두 번째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 (사진 = 서범세 기자)

인생의 전환점 된 ‘유라시아 친선특급’

“1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하니 또 딴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이것저것 회사에 대한 아쉬움과 섭섭함이 생기던 때 우연히 ‘유라시아 친선특급’이라는 프로그램을 접하게 됐어요.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19박 20일 동안 블라디보스토크, 모스크바 등을 거쳐 유럽까지 가는 것이었죠. 함께 할 국민원정대를 모집하기에 일단 지원을 했어요. ‘설마 될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로 선발이 됐더라고요.”

유라시아 친선특급은 지난 2015년 코레일과 외교부가 주관한 문화 행사다. 유라시아 친선특급을 타고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고자 기획됐다. 유라시아 친선특급은 당시 ‘유라시아 원정대’ 국민공모를 진행했다. 친선특급열차 탑승기간 동안 문화사절단 역할을 할 재능기부자 70명을 모집한 것이다.

행사지원, 학술·홍보, 문화행사 등 3개 분야에서 모집을 진행했는데, 서 작가는 러시아어 전공자로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까지 하게 됐다. 기대하지 않았던 합격 소식에 얼떨떨했지만, 놓칠 수 없는 기회란 생각에 연차를 몽땅 끌어다 쓰며 유라시아 친선특급에 올랐다.

“유라시아 친선특급이 커다란 삶의 전환점이 됐어요. 함께 한 사람들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거든요. 그동안 제 주변에는 저처럼 공부만 하고 정해진 길을 살아온 사람들만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정말 다양한 삶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자신의 일에 대해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다녀온 후, 머릿속에서 ‘나도 내 일에 대한 열정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더라고요.”



△ (사진 = 서범세 기자)

첫 번째 사직서는 ‘끝’, 두 번째 사직서는 ‘시작’

결국 서 작가는 두 번째 퇴사를 감행했다. 더 이상 회사에서의 미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서였다. 한 직장에서 두 번째로 던진 사직서였지만 처음과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첫 사직서가 ‘끝’을 의미했다면, 이번에는 ‘시작’이었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다가 벗어버린 느낌이었죠. 일단 회사를 나와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해보기로 했어요. 퇴사 후 대학원에서 논문도 마무리하고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에 러시아 여행을 다니며 느낀 감상 등을 꾸준히 썼어요. 친구가 진행하는 러시아 전문 팟캐스트에 패널로도 출연했죠. 즐기면서 하다 보니 기회는 찾아오더라고요. 글쓰기 플랫폼에 올린 러시아 여행기를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고, 팟캐스트를 하며 러시아 여행작가님과 인연이 닿아 함께 첫 책을 출간할 기회도 얻게 됐죠.”

서 작가는 지난해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올해 두 권의 여행 책을 출간했다. 최근 들어 러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책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여행작가 서진영’이라고 쓰인 명함도 새로 생겼다. 서 작가는 “답답한 회사 생활을 벗어나 매번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물론 꼬박꼬박 나오던 월급이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불안감은 남아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 매일 다른 내일을 꿈꾸며 사는 것에서 월급보다 더 큰 만족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대학을 다닐 때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았어요. 다른 곳은 보지 않고 정해진 길만 걸었죠. 회사 생활을 하고 나서야 뒤늦게 나의 일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어요. 남들이 좋다고 하고, 맞다고 하는 길이 정답은 아니에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고민을 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관심사에 몰입하다보면 어떤 길, 어떤 분야가 있는지 찾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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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부터) 얼음바다, 바이칼 호수, 러시아식 사우나 (사진 제공=서진영)



“러시아의 겨울은 정말 추워요. 하지만 진정한 러시아를 느끼려면 겨울을 봐야한다는 말도 있죠. 추운 날씨 때문에 볼 수 있는 장관도 많거든요. 블라디보스토크에 가면 꽁꽁 얼어있는 바다를 만날 수 있어요. 얼음 바다 위를 걸어보는 재미가 이색적이죠. 추위에 떨고 난 후에는 러시아식 사우나를 강추해요! 러시아 시베리아 남동쪽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호수 ‘바이칼 호수’도 멋져요. 1~2월에 가면 호수가 얼어있는데 그 모습이 정말 멋져요. 물론 어딜 가든 추위는 감안해야합니다.(웃음)”

phn09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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