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은 영감을 얻기 위한 수단?’...문창과 인턴기자의 예술경영 취업 상담기

입력 2017-10-26 10:38



△‘2017 예술경영 컨퍼런스’ 취업 컨설팅 멘토링을 받는 청년들의 모습

[캠퍼스 잡앤조이=이신후 인턴기자] 10월 25일 오전 10시, 고려대역에 도착해 3번 출구로 나와 ‘김희수 기념 수림아트센터’로 향했다. ‘2017 예술경영 컨퍼런스’에서 열리는 취업 컨설팅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수림아트센터는 수림문화재단이 설립해 꾸준히 미술 전시와 공연을 올리고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정문 앞에 놓여있는 입간판 하나…나, 맞게 온 거겠지?

출구에서 나오면서부터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서로 흘깃거리며 10분~15분 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수림아트센터가 보였다. 그런데 행사장 정문에는 ‘2017 예술경영 컨퍼런스’ 포스터를 세로로 길게 출력해 걸은 입간판만이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반만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ㄱ자로 꺾인 복도를 따라 로비로 가니 현장 등록하는 접수대가 있었다. 우리는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맞게 도착했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눈에 보였다.

‘2017 예술경영 컨퍼런스’는 오전에는 취업 컨설팅을, 오후에는 예술경영 우수사례 발표 프로그램으로 나눠 진행된다. 취업 컨설팅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참여할 수 있다. 3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30곳의 문화예술 분야 주요 기관 및 기업의 취업 정보를 들어야 한다. 취업 컨설팅에 참여한 문화예술기관은 연극, 미술, 음악, 공연장 분야를 다루는 곳이거나 문화재단이었다. 경기문화재단, 국립극단, 서울시립미술관, 세종문화회관, KT&G 상상마당, 예술의전당 등의 기관명을 보며 상담을 꼭 받아보고 싶은 곳에 체크 표시를 했다. 지하 1층 로비에서 현장 등록을 마치고 2층 강의실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취업 컨설팅 멘토링 사전 신청자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강의실에서 취업 설명회 하는 광경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야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보인 것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취업 컨설팅 멘토링과 상담을 받는 청년들이었다. 눈대중으로 살펴보니 약 80명이 취업 컨설팅에 참여 중이었다.

취업 컨설팅이 열리는 강의실은 대학교 중형 강의실보다 조금 더 컸다. 여기서 30개 기관이 모두 모여 있기에 부스라고 해봤자 1곳당 책걸상 2개를 붙여 인사담당자 2명이서 상담을 해주는 식이었다. 기관명은 명함꽂이 같은 것에 종이를 붙여서 명시해 놨다. 그래서였는지 안내 책자와 안내 입간판에 참여 기관을 큼직하게 표시했는데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걷다 말고 책자와 책상을 하나하나 살펴봐야 했다.

분위기 파악은 끝냈으니, 이제 본격적인 상담에 돌입할 때. 상담 받는 청년들이 많아 체크한 곳 모두 취업 정보를 얻기기 힘들 것 같았다. 결국 ‘국립극단’, ‘세종문화회관’, ‘KBS교향악단’ 3곳으로 좁혀 상담을 받았다.

미안하다, 오해했다…작다고 얕보면 슈퍼울트라 스튜!

먼저 국립극단으로 향했다. 대기자가 없어 곧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인사담당자는 먼저 전공과 상담을 받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 물었다. 문예창작 전공이라고 답하며, 글만 써서 돈 벌기란 쉽지 않으니 타협점을 찾아 예술기관에 취업할 방도를 얻으러 왔다고 덧붙였다. 인담은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준 뒤 “예술은 타협하면 안 된다”는 말로 상담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면서 “취업과 본인이 쓰고자 하는 글 둘 중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 후 방향부터 확고히 해라”고 말했다. 취업 상담이 뜻밖에도 인생 상담으로 흐르는 순간이었다. 간신히 “만약 취업을 선택하게 된다면 홍보·마케팅 직군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해 다시 취업 상담으로 돌아갔다.

인담은 “국립극단은 채용 부문이 음향, 경영관리, 시설관리, 공연기획, 홍보·마케팅 등인데, 비전공생들은 주로 공연기획과 홍보·마케팅 쪽으로 지원한다. 자격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며, “이 경우 주로 자기소개서와 면접으로 연극에 대한 열정과 의지, 얼마나 극을 연구했는가를 본다”고 채용 기준을 설명했다. 연극에 대한 애정도와 연구력은 면접에서 간파할 수 있는데, 주로 던지는 질문은 ‘최근에 본 연극은 무엇인가’, ‘한 달에 몇 편을 관람하나’라고. 또한, 국립극단의 채용은 정기적으로 진행하지 않으며, 결원이 발생하면 채용 공고를 낸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생활을 목적으로 취업하지 말라. 영감을 얻기 위해 취업을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거였으면 좋겠다”며 기자의 꿈을 응원해줬다.

이후의 상담은 모두 홍보·마케팅 직군을 희망한다고 하며 조언을 들었다. 인생 상담까지로 흘러갔더니 국립극단에서 받은 상담만 30분 이상이 소요됐던 것이다.

국립극단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세종문화회관. 잠시 쉬는 시간이었는지 세종문화회관 직원들이 놀러 와있었다. 그들의 자리를 뺏고 의자에 앉았다. 그러면서 홍보·마케팅 부문을 희망하는데 어떤 역량을 지니는 게 유리한지 물었다. 인사담당자는 “‘소통 능력’, ‘언어 능력’이다. 국내 사업과 해외 사업을 고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직무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어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역량이다. 오케스트라, 오페라 등을 다루는 사업의 경우, 외국에서 음악감독과 협연자를 데려오기도 한다. 이들과 소통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세종문화회관은 모든 부문의 직원을 블라인드 방식으로 채용하고 있었다. 학력과 전공, 성적 등이 전부가 아니니 너무 마음 쓰지 말라는 격려도 들었다. 다만 홍보·마케팅 부문의 경우 필기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인담은 “‘세종문화회관 사업을 효과적으로 홍보할 방안’이나 ‘보도자료를 작성하시오’와 같은 문제를 출제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관 및 기관이 진행하는 사업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올해 안에 신규 채용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기자가 시무룩해하자 인담은 “내년이나 내후년쯤 경영, 공연기획, 홍보·마케팅 채용 공고가 나올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 문화예술기관 취업 컨설팅에 참여하는 인사담당자들과 청년들의 모습

마지막 임팩트가 너무 컸다, 취업준비생 못지 않은 인담자의 열정

이제 마지막으로 KBS교향악단 상담을 받으러 갔다. 가면서도 아쉬움이 남아 이곳저곳 기웃거려봤으나, 모든 기관이 상담 중인데다 대기자도 있었다. 시간을 보니 12시. 과연 아침보다는 사람이 많을 때였다. 빠르게 KBS교향악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역시나 KBS교향악단도 상담자와 대기자가 있었다. 의자에 앉아 안내 책자를 정독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순서를 기다렸다. 그리고 30분 뒤에야 차례가 왔다. 의자에 앉으면서 ‘대체 무슨 할 말들이 이렇게 많은가’ 궁시렁댔다. 이 생각은 인사담당자를 만나고서야 납득이 됐다.

인사담당자는 내 전공을 듣자마자 “문예창작! 좋은 전공이에요. 우리나라 사람은 스토리텔링을 좋아하지. 미술 작품이나 곡에 설명을 재밌게 붙여주면 관심 갖고 보거든. 자기소개서에 처음을 스토리텔링에 자신 있다고 시작하면 면접관들에게 호응을 끌어낼 거예요”라며 노하우를 전해주기 시작했다. 이후 오케스트라 소개 팜플릿과 A4용지에 인쇄한 채용 관련 PPT까지 보여주며 설명하기까지. 조직도와 부서별 업무, 채용 절차까지 세세한 설명을 들었다. 바로 옆에 앉은 인사담당자는 아이패드까지 동원하며 상담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앞서 상담 받은 기관들과 비슷하긴 했다. 1차 서류, 인적성검사 및 필기시험, 2차 면접.

필기시험 기출문제를 알려달라고 하자 인담은 “살짝만 알려준다면 ‘사업성 및 수익성 확보 방안’, ‘회원 및 후원회 확보 방안’, ‘새로운 홍보 방안’을 묻는 게 나온다”고 말했다. ‘살짝’이 아니라 전부 알려준 것 같은 건 내 착각이겠지? 이어 “KBS교향악단뿐만 아니라 입사하고자 하는 문화예술기관의 사업을 잘 파악하고, 공연 및 공연장을 자주 보라. 그리고 내가 입사하게 된다면 어떤 프로젝트를 해볼 것인지 연구하는 것도 입사에 도움된다”는 조언을 내놨다.

또한, 자기소개서 항목을 보면 기관이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알 수 있을 거라고도 말했다. 교향악단의 인재상을 묻자 “우리 기관은 엔터테이너를 원한다. 자신의 업무만 잘하는 전문가보다는 열려있는 사고로 여러 부서와 협업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원한다”고 했다. 인사담당자 역시 경영관리팀 팀장이자 홍보마케팅 팀장이었다. 마지막으로 간단한 면접 질문처럼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물었는데, 나도 모르게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랑 같이 협연하는 곡이면 다 좋아하는데……”라고 대답해버렸다. 그러자 인사담당자가 정색하면서 “그러면 탈락해”라고 했다. 순간 귓가에서 김생민 씨의 ‘스튜!’ 음성이 지원되며 ‘삐~’ 하는 효과음이 들린 것 같은 환청이.

상담을 모두 끝내고 취업 컨설팅 멘토링 부스로 가서 기웃거렸다. 김찬동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차재근 서울시청년허브센터장이 멘토였다. 멘토링은 사전 신청자만 받을 수 있었다. 아쉬운대로 후기를 들어보고자 멘토링을 마친 학생을 붙잡았다. 차재근 센터장과 막 상담을 끝낸 이다운 씨는 자리에 서서 상담 내용을 정리 중이었다.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내 문화예술 정책 연구를 진행 중이라는 이 씨는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 당장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첨삭받진 않았다. 멘토가 문화예술 정책 전문가여서 연구와 관련해 질문했다. 취업 관련해서는 내 연구를 들어보더니 연구를 하기에 적합한 기업, 연구를 활용하기 좋은 기업을 추천받았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취업 컨설팅 프로그램 규모가 작고, 시장통 같은 분위기에 ‘에게, 여기서 무슨 취업 컨설팅을 한다고?’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상담을 적게 받았는데도 취업 정보와 인생 방향 모두 잡을 수 있는 시간이 됐다.



sin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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