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세입자보호법 의회서 부결…조기 총선 수순
87세 노인 강제퇴거에 연일 시위…산체스 총리 "진실의 시간"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스페인 정부가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세입자 보호 대책이 의회에서 전부 부결됐다. 최근 87세 노인 강제퇴거 사건으로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지는 와중에 야권 반대로 법안이 무산되자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조기 총선 승부수를 던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스페인 의회는 2일(현지시간) ▲ 2028년까지 임대차 계약 자동 연장 ▲ 단기 임대차 규제 강화 ▲ '투기성' 펀드의 주택시장 투자 금지 ▲ 취약계층 세입자 퇴거 제한 ▲ 주택 임대·건축 세제 혜택 등을 담은 법령 2건을 모두 부결했다. 보수 야당 국민당(PP)과 극우 복스당(VOX)뿐 아니라 한때 산체스 정부에 협조했던 카탈루냐 분리주의 정당 '카탈루냐와 함께'(Junts)도 반대표를 던졌다.
산체스 총리는 의회 바깥에서 수천 명이 시위하는 가운데 표결 직전 "계속 오르는 임대료로 항상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가족들을 생각해보라"고 호소했으나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다.
스페인은 단기 관광객 수요를 겨냥한 부동산 투기 등으로 고질적 주택난에 시달려왔다. 매물 검색 사이트 이데알리스타에 따르면 1㎡당 임대료는 2016년 평균 8.2유로(약 1만2천100원)에서 올해 15.1유로(약 2만2천900원)로 10년 사이 84% 뛰었다. 최근에는 마드리드의 집에 70년 넘게 거주한 마리 카르멘 아바스칼(87)이 급등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강제 퇴거당하면서 대규모 시위가 촉발됐다.
임차인 보호단체들은 주택 위기가 해소될 때까지 임차료를 동결하고 강압적 집주인을 제재하는 더 강력한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법은 집에서 쫓겨난 노인의 이름을 따 '마리카르멘법'으로 불린다. 스페인세입자연합은 이날 총파업을 촉구하며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마드리드 시내 푸에르타델솔 광장에서 천막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좌파 소수 정부를 이끌어온 산체스 총리가 이번 기회에 내년 여름까지 임기인 의회를 해산하고 새로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체스 총리는 이미 지난 7월 북아프리카 영토 세우타에서 발생한 이민자 대규모 월경 사태와 가족 비리 의혹 등으로 위기에 몰려 있다.
산체스 정부는 광장 점거 시위를 해산해달라는 마드리드 지방정부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이날 의회 표결은 여권의 요구에 따라 기명으로 진행됐다. 일간 엘파이스는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산체스 총리가 조기 총선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보도했다.
산체스 총리는 전날 엑스(X·옛 트위터)에 "진실의 시간이 왔다"며 야권에 "사회적 다수 편에 설지, 투기꾼 편에 설지"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산티아고 아바스칼 복스당 대표는 "선거를 빨리 치를수록 더 좋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당이 지지율 34%, 산체스 총리가 속한 사회노동당(PSOE)이 26%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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