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산업역군' 경유 수출 금지 땐 세계경제 충격 도미노

입력 2026-10-02 11:11
미국 '산업역군' 경유 수출 금지 땐 세계경제 충격 도미노

산업 전반 생산·물류 비용 늘려 전방위 경기부진·물가고 우려

유럽·중남미엔 직격탄…"2022년 천연가스 위기 맞먹을 사태"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경유 가격을 잡기 위해 수출 금지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는 가운데 실제로 이렇게 될 경우 세계 경제가 심각한 연쇄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유는 선박, 화물 트럭, 농기계, 중장비 등 산업 전반의 생산 수단을 돌리는 핵심 에너지다. 공급 부족은 경기둔화와 물가 상승을 자극할 위험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주요 악재인 고물가를 잡을 대책으로 경유 수출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내 경윳값은 작년 동기보다 70% 급등한 갤런당 6.5달러를 넘어 국민 생계를 타격하면서 여당을 향한 여론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경윳값 안정을 위해 전략비축유를 방출하지 않으면 미국의 경유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유럽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일(현지시간) 미국의 압박을 비롯한 연료 가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원국들과 긴급 대책회의를 열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경유 수출을 제한하면 미국 내 물가는 잠시 억제되지만 나머지 세계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내다본다.

미국의 컨설팅업체 라피단 에너지 그룹의 로버트 맥널리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엄청난 충격과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는 경윳값의 거대한 상승분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선택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경제연구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2022년 유럽의 천연가스 위기와 맞먹을 사태를 우려했다.

당시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에 맞서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을 막아 유럽의 연료비, 전기요금, 생활비 폭등을 유발했다.

경악한 유럽이 웃돈을 주고 해상 액화천연가스(LNG) 물량을 대거 사들이면서 재정이 열악한 전 세계 신흥국들은 더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었다.

유럽은 미국산 경유가 차단되면 중동과 동유럽 전쟁 때문에 유발된 에너지 수급 차질이 한층 더 악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정유소를 계속 공습해 연료 부족 사태를 촉발하자 경유 수출을 자제하고 자국에 쌓아두기 시작했다.

이란은 미국과의 전쟁 과정에서 주변국 정유시설을 파괴하고 해상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위협해 공급 경색을 불렀다.

게다가 유럽은 친환경 정책으로 자체 정유공장을 축소한 까닭에 이 같은 악재에 더해 미국산 경유 의존도가 전체의 3분의 1 정도까지 커졌다.

유럽은 난방과 전력 생산에 쓰이는 천연가스 재고마저 역대 최저 수준인 처지에서 혹한이 도사리는 겨울을 맞이한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최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에너지 장관 회의를 앞두고 "경유에 가장 취약한 곳은 유럽"이라고 지적했다.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을 최대 경유 공급국으로 삼는 캐나다, 멕시코 등 미주 국가들도 광범위한 충격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경유는 중공업 필수인 중장비, 물류 핵심인 트럭과 선박, 농업 도구인 농기계의 동력원으로 '산업의 역군' 격인 연료(Workhorse Fuel)로 불린다.

따라서 경윳값이 뛰면 경제활동 전반에서 생산과 운송 비용이 뛰고 주유소 휘발유부터 동네 가게의 식료품까지 생필품 가격이 모조리 뛴다.

정유시설이 전혀 없이 미국에 수입을 의존하는 온두라스, 파나마 등 중남미 국가들은 단순한 손실을 넘어 재난적 상황까지 우려하고 있다.

아시아는 유럽을 비롯한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미국의 경유 수출 금지에 따른 직접적 영향은 덜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중국 등 주요 경유 생산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들에서 물량을 주로 조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세계가 사실상 하나의 시장인 상황에서 경윳값 상승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작지 않은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컨설팅 업체 우드 매켄지의 수샨트 굽타 석유 담당 연구이사는 NYT에 전 세계의 경유 가격이 급등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굽타 이사는 "세계가 이미 경유 부족에 휘청거리고 있다"며 "유럽은 경유가 부족하면 다른 공급처에서 웃돈을 줄 것이고 아시아든 유럽이든 세계는 모두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는 벌써 비싼 경윳값과 연쇄적 물가 상승에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글로벌 경유 시장의 중대 변수로는 중국의 동향이 지목된다.

중국은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발발하자 경유 수출을 제한해 주요 수입국들의 고물가를 부채질했다.

미국이 경유 수출을 중단한다면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수출 역량을 갖춘 곳은 세계 최대 생산국인 중국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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