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새 묫자리 계속 파는 러 국립묘지…"북한군 잊지 않을 것"
北파병 기념현판 설치된 러 '조국수호자판테온'에 한국 언론 첫 방문
북한군 부조 아래 "위훈 잊지 않겠다" 문구…기념관 내부엔 인공기 걸려
기념관 직원 "곧 북한군 위한 전시회 예정"…北수집품 채울 빈 진열장도
(미티시[러시아 모스크바주]=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시에서 버스를 타고 북쪽의 모스크바주 미티시구로 한참을 가면 허허벌판에 커다란 기둥 모양의 조형물 2개가 위압감까지 풍기며 우뚝 선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러시아 국방부 산하 국립묘지, '조국수호자판테온'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북한군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물이 두 달 전 이곳에 설치된 사실을 전한 북한과 러시아 매체들의 보도로 최근 국내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연합뉴스는 지난 19일(현지시간) 국내 언론매체로는 처음으로 이곳을 찾았다.
묘지에 안장된 전몰자의 유족 외에는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시설이지만, 기자는 당국의 허락을 받아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낮 12시 24분, 그날의 81번째 입장자로 기록됐다.
55헥타르(약 16만6천400평)에 이르는 거대한 부지에 발을 들이자마자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느낌을 받았다.
일직선으로 뻗은 보도를 800m쯤 걸어가야 무덤들이 자리 잡은 공간에 닿는다. 그 길목 중간에 '특별군사작전', 즉 우크라전 참전 군인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이 있다.
이 건물 외벽에서 지난 7월 24일 제막식을 열었던 북한군 파병 기념 현판을 찾았다. 북한군 병사가 인공기를 배경으로 소총을 들고 선 모습을 묘사한 부조 형태였고, 소총은 러시아군 주력 제식소총인 AK-12와 비슷한 생김새로 보였다.
현판 아래에는 "러시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투원들이 쿠르스크주에서 세운 위훈을 잊지 않을 것이다"라는 러시아어 문구가 새겨졌다. 그 앞에는 흰색과 붉은색 생화 다발이 놓였다.
건물 안에서 나온 직원이 "곧 우리 기념관에서 북한 군인들을 위한 전시회를 열 예정"이라고 설명하더니 안에도 볼 것이 많다며 기자를 이끌었다.
훈장, 사진, 군사장비, 개인용품 등 참전 군인들의 유품이 빼곡히 정리된 기념관 내부에서는 유리 진열장 하나만 텅 비어있었다. 이 진열장은 나중에 북한군 관련 수집품으로 채워질 계획이라고 했다. 그 옆에는 전쟁 초반 우크라이나에서 악명을 떨친 러시아 민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관련 물품들이 보였다.
건물 천장에 걸린 러시아 국기와 육해공군기 사이에 북한 인공기가 나란히 포함된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직원은 "겁먹지 말고 들어와 보라"며 기자를 건물 구석의 어두침침한 골방으로 데려갔다. 전장의 러시아군 참호를 재현해놓은 공간이었는데, 건물 외벽 현판과 유사한 이미지의 선전물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기념관을 나서려고 하자 직원은 "오늘이 마침 AK 소총을 개발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를 기념하는 '총기 제작자의 날'이니 묘지 내 15번 구역에 안장된 그의 묘를 꼭 들러보라"고 알려줬다.
전사자 묘역은 지난 4년 반 사이 새로 마련된 무덤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곳곳에서 새 묫자리를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드문드문 꽃을 가져온 유족들이 군데군데서 조용히 참배하고 있었다.
매장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한 무덤에는 스타리친 알렉세이 세르게예비치라는 이름의 29세 부사관이 묻혔다. 전사한 날짜는 불과 한 달 전인 8월 16일로 적혔다. 인터넷 기록을 보면 쿠르스크 전선에 배치된 제155독립근위해군보병여단 소속 저격수로 알려졌다.
그 근처에는 47세로 사망한 지 딱 일주일 된 제4독립근위소총여단 지휘관 안톤 펠릭소비치 그루니스의 무덤이 보였다. 우크라이나군 공습에 폭사한 것으로 기록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그루니스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의 코스티안티니우카를 점령했다고 보고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극찬을 받았는데, 사실은 점령 주장이 허위였다는 취지로 보도한 바 있다.
묘역 상당수는 관 없이 땅만 파고 추모비를 꽂은 가묘들로 채워졌다. 시신이 제대로 수습되지 못했거나 신원 확인을 마치지 못한 사례들일 터였다.
국립묘지의 핵심 상징인 '영원의 불꽃' 앞에는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아들을 양팔로 받아 안은 어머니를 형상화한 대형 동상 '비통'이 있다. 죽은 예수를 끌어안은 성모 마리아를 표현한 예술작품 '피에타'를 본뜬 형태다.
지난 18∼20일 치러진 러시아 총선에서 집권당이 다시 압승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공고해졌다. 이제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러시아가 다시 대규모 동원으로 병력을 충원할까 봐, 북한이 추가 파병에 나설까 봐 걱정한다.
포화가 멎지 않는다면 러시아에서, 북한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또 다른 많은 어머니가 비통에 잠기게 될 것이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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