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몰린 이란 환자들…美 제재에 의약품 품귀"
의약품은 제재 대상 아니지만 수입 절차 복잡
"외국은행·기업이 이란과 거래 자체를 꺼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 미국의 제재와 이에 따른 물가 폭등으로 의약품이 부족해지면서 이란 중증·만성 환자들이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고 미국 CNN방송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CNN과 인터뷰한 이란 주민들은 심각한 약품 품귀 현상에 약값마저 매일 오르고 있어 환자들이 약 복용량을 줄이거나 의사 진료를 미루고 심지어 자가 치료를 택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테헤란 주민 시마는 이 방송에 "암 말기이거나 병세가 중증으로 진행된 환자들에게는 (병원에서) 암 치료제 투여를 중단했다고 들었다"며 "아주 초기 환자들에게만 약을 주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CNN은 이란 정부가 유럽에서 백신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올해 계절성 독감 예방접종도 취소됐고 암 환자들은 터무니없이 비싼 약을 사려고 가전제품을 팔고 있다고 전했다.
55세의 한 암 환자는 CNN과 통화에서 "해외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내 약, 특히 여기서 구할 수 없는 약들을 좀 가져다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있다"며 "병마와 전쟁이라는 불확실성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CNN과 접촉한 이란 현지 약국들에서는 심장병 치료제는 국산 복제약으로 대체됐고 편두통약은 매대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란 언론들도 항우울제, 인슐린, 임신부 관련 의약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약품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란 약사회 회장 샤흐럼 칼라타리는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800여종의 약품이 부족하고 약국들은 치솟은 가격 탓에 대체품조차 확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인도주의적 위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 정책이 직접적 이유다. 수입 약품 비용을 결제해야 하는 이란 은행들이 제재의 범위에 들어왔고 이란의 주요 외화 수입원인 석유 수출이 막혔다.
이란 식품의약청은 필요한 의약품의 97%를 국내에서 제조하고 있다고 했으나 원자재나 장비, 기술은 수입에 의존해야 하고 일부 특수 의약품은 반드시 수입해야 한다고 CNN은 짚었다.
이란 당국자들은 민간 의료보험회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중단하면서 약국들이 재고를 채우지 못하고 있고 환자가 사비로 약값의 전부를 지불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란 정부는 국민의 생사가 달린 약품 자급을 위해 애쓰고 있으나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으로 40곳 이상의 제약사, 연구소, 제약 장비 공급사, 유통업체가 파괴돼 큰 타격을 입었다.
미국은 제재에도 의약품을 비롯해 식량, 농산물 등 인도주의적 물품 수입은 예외로 인정하고 있으나 이들 물품이 '악의적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몇 가지 '안전 장치'를 추가했다.
미국은 2019년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대상에 올렸으며 이란에 인도적 물품을 수출하려는 외국 정부와 기관에 구매자 정보, 제재 대상으로 재판매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각서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지난주엔 이란과 거래를 위한 특정 면허에 대해 '거부 추정'(presumed denial·특별 예외가 없는 한 기본적으로 무조건 거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정책) 입장을 채택하고 신청 건별로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공식적으론 인도적 물품은 제재하지 않는다면서도 실제 면허를 내주는 행정 절차를 거부 추정으로 바꿔 외국 기업들이 이란에 접근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란의 대형 제약회사들이 미국의 제재 대상은 아니지만 제재를 받는 종교재단이나 기업과 연계된 경우도 있어 외국 기업들이 섣불리 거래하지 못하는 것도 의약품 부족의 이유 중 하나다.
제재 이행·집행 전문가 에리히 페라리는 CNN에 "'과잉 준수' 역시 문제"라며 "은행이나 무역 회사들이 (이란과의) 특정 거래 자체를 단순히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 은행들이 이란의 거래 주체가 누구인지, 자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돈의 출처가 어디인지 잘 모르니 거래를 아예 포기한다는 것이다.
페라리는 "제재가 이렇게 가혹한데 이란인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 자체가 정말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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