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중동, 재정 쪼들리는 유엔 국제기구 유치 각축전
트럼프 원조삭감에 단체들 비용절감 골머리
전통적 거점 제네바는 엑소더스 동향에 비상
(서울=연합뉴스) 곽민서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외 원조 삭감 여파로 국제기구의 자금난이 심화하면서 중동과 유럽 각국이 기구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특히 물가와 운영 비용이 높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구를 빼 오려는 움직임이 확산하자 국제기구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지키려는 스위스에도 비상이 걸렸다.
6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스위스 당국은 최근 약 20개국이 국제기구 유치를 둘러싼 경쟁에 뛰어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국가뿐 아니라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도 유엔 관련 기구 유치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국제기구들은 대부분 스위스 제네바에 집중돼 있었다. 제네바에는 약 450개의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가 자리 잡고 있으며, 약 185개국이 제네바에 상설 대표부를 두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대외 원조 금액 대부분을 동결하고 여러 유엔 기구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금난에 직면한 국제기구들이 운영비가 저렴한 제3의 지역을 물색하기 시작했고, 이를 틈 타 세계 각국이 기구 유치전에 나선 것이다. 상황에 밝은 한 스위스 당국자는 "여러 유럽 국가가 국제기구 유치에 욕심을 내고 있으며, 현재의 위기 상황을 이용해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려 한다"며 "이건 노골적인 가로채기"라고 FT에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일부 국가가 제네바에서 자국 도시로 옮겨오는 직원 한 명당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유니세프는 인력 수백 명을 이탈리아 로마 등 운영비가 낮은 도시로 옮기고 있으며, 국제노동기구(ILO)도 일부 직원과 기능을 이탈리아 토리노 연수센터로 이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본부 기능 일부를 프랑스 리옹으로 이전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걸프 국가 가운데에는 카타르가 가장 강력한 후보지로 꼽힌다.
스위스 당국자들은 최근 이란 전쟁 과정에서 카타르가 국제적 중재자로서 몸집을 키웠다고 평가했다.
카타르는 이러한 외교적 영향력에 "매우 매력적인 재정적 제안"까지 더해 국제기구 유치를 시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위스도 국제기구 이탈을 막기 위한 대응에 나섰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지난 6월 유엔 기구들의 재정 위기와 국제기구 유치를 둘러싼 국가 간 경쟁 심화를 이유로 제네바의 국제기구 밀집 구역인 '인터내셔널 제네바'에 2억6천900만스위스프랑(약 4천470억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스위스 당국자들은 국제기구 이전에 따른 재정적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제네바는 이미 국제기구를 위한 행정 지원 및 외교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지만, 다른 도시로 기구를 이전할 경우 이를 처음부터 새로 구축해야 하는 만큼 임대료 절감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될 수 있다는 것이다.
ms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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