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보다 '바다' 택했다…아이슬란드, EU 가입 협상 재개 불발(종합2보)
국민투표서 반대 53% 대 찬성 47%…투표율 82.5%
지정학적 급변에도 'EU 울타리'보다 '자체 통제권' 선택
수출 주력 어업권 침해 우려…농어촌 지역 반대 표심 쏠려
총리 "임기내 재추진 안해, EEA 관계 강화"…EU "선택 존중"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아이슬란드 국민들이 유럽연합(EU) 가입 협상 재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반대'를 택했다.
30일(현지시간) 현지 공영방송 RUV에 따르면 유권자 22만5천명(82.5%)이 참여한 이번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52.8%로 찬성 47.2%를 앞섰다.
개표 초반에는 찬성이 다소 앞섰으나 개표가 계속되면서 반대 우세로 뒤집혔고 조금씩 격차가 벌어졌다.
지역별로 찬반이 크게 엇갈렸다.
수도 레이캬비크 북부 선거구에서는 찬성 57.5%, 반대 42.5%였고 레이캬비크 남부 선거구는 찬성 54.5%, 반대 45.5%였다.
이와 반대로 남부는 찬성 39.5%·반대 60.5%, 북서부는 찬성 37.1%·반대 62.9%, 북동부는 찬성 38.8%·반대 61.2%, 남서부 찬성 47.0%·반대 53.0%였다.
이같은 국민투표의 결과에 따라 아이슬란드는 최소한 이번 의회 임기가 끝나는 2028년까지는 가입을 추진하지 않는다.
중도좌파 집권 사회민주당의 크리스트룬 프로스타도티르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어 80% 넘는 유권자가 목소리를 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우리 정부는 이번 임기에 가입 협상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이 유럽경제지역(EEA) 협정에 만족한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며 "EEA 관계를 계속해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는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EEA와 솅겐조약 가입국이다.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아이슬란드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며 아이슬란드는 계속해서 EU의 가까운 파트너일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프로스타도티르 총리와 연락해 양자 관계를 계속해서 강화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공유했다고 코스타 의장의 대변인이 전했다.
이번 국민투표는 10여년 만에 EU 가입을 위한 협상을 재개할지 묻는 것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아이슬란드는 이듬해인 2009년 EU 가입을 신청해 협상을 진행했지만, 2013년 EU 가입에 회의적인 정부가 집권하면서 협상을 중단했다.
그러다가 2024년 가입 협상 재개를 공약한 정부는 러시아발 위협이 계속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위협 등 지정학적 혼란이 커지자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국민투표를 치렀다.
정부를 중심으로 한 찬성 진영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트럼프 정부의 그린란드 병합 위협, 관세 갈등 등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응하는 데 EU가 울타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극권 바로 남쪽 북대서양에 자리한 전략적 요충지로 1944년 덴마크로부터 독립한 아이슬란드는 자체 군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안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지위와 1951년 미국과 체결한 상호 방위 협정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찬성 진영은 EU 가입이 아이슬란드의 높은 금리와 물가상승률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그러나 반대 진영에서는 아이슬란드의 주권과 어업 수역이 제한받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EU의 일원이 될 경우 아이슬란드의 입법과 규제 권한의 일부가 EU로 넘어가 독자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워질 수 있고, 특히 수출 40%를 차지하는 주력 산업이자 국가 정체성의 핵심인 어업 부분의 자체 결정권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실제로도 도시 지역인 수도권에선 찬성률이 높았으나 농어촌 마을이 많은 지역에선 반대율이 높았다.
아울러 인구 40만명의 작은 나라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5위인 북극권의 부국으로서 아이슬란드가 민주주의나 삶의 질, 국민소득 등 각종 국제지표에서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EU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도 투표 결과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최종적으로는 주권과 자율성, 자체적인 통제권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른 셈이다.
이는 북극 안보에 관한 관심이 높은 시기에 EU의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고 유럽통합과 EU 확장을 둘러싼 회의론을 가라앉힐 계기를 기대하고 있던 EU로서는 실망스러운 결과다.
중도주의 성향 산드로 고지 유럽의회 의원은 이번 결과가 EU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면서 "유럽은 더 민주적이고, 더 효율적이며, 시민과 더 가까워져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더 빠른 결정, 더 간소한 제도, 덜 관료주의적이고 더 강한 민주적 책임"을 주문했다.
영국의 브렉시트 운동을 주도했던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는 엑스(X·옛 트위터)에 "아이슬란드가 독립을 지키기로 한 것을 축하한다"고 썼고, 프랑스 극우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의원도 "자유로운 주권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공동의 이익에 협력하는 유럽"을 보여준다고 환영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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