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우려되는 트럼프의 '김정은 대화' 조급증
한미훈련 축소하며 대화 손짓…北은 비핵화 요구 철회 원해
정상회담 성사보다 결과물 중요…韓입장 충분히 반영돼야
(워싱턴=연합뉴스) 이유미 특파원 = "미국의 동맹이 누구이고 적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것 같아 놀라울 뿐이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최근 워싱턴DC 싱크탱크 세미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안보 위협으로 지목돼 온 북한에는 한미연합훈련 축소라는 선물을 안겨주면서, 정작 동맹인 한국에는 이란전 비협조를 문제 삼으며 압박하는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올해 안에 만나겠다며 북미 대화 재개 의지를 한층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북한에 대해 위협적이지 않고 미국을 존중하는 나라라고 평가하며 한미연합훈련 시작 당일 훈련을 대폭 축소하라고 지시한 것도 김 위원장과의 대화를 염두에 둔 유화 제스처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손짓에도 별다른 화답을 하지 않고 있다.
과거 북미 정상외교가 활발히 이뤄진 2018∼2019년과 비교하면 김 위원장이 협상장으로 나올 유인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북한은 그사이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밀착한 데다 중국이라는 전통적 우군의 지원도 등에 업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대화에 몸이 달수록 김 위원장으로서는 미국이 어디까지 양보할지를 지켜보며 몸값을 더 높이려 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받고 국제사회의 제재 실효성이 약해진 점이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대화 재개 구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정작 협상에 필요한 지렛대를 스스로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미 대화의 목표가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냐'는 질문에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김 위원장과의 대화 재개 의지는 거듭 강조하면서도 정작 협상을 통해 무엇을 얻어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 것이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라는 목표보다 김 위원장과의 정상외교 재개 자체에 무게를 두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비핵화 목표를 명확히 확인하지 않는 것은 자칫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도 있다.
물론 북미 대화 자체를 경계할 이유는 없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낮추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라도 대화 시도는 필요하다.
다만 과거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정상 간의 만남이 성사되는 그 자체가 외교적 성과가 될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 김 위원장과 세 차례 만났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이후 오히려 고도화됐다.
더욱이 북미 대화를 위해 한미연합훈련 축소 등 동맹의 안보와 직결된 카드를 먼저 내주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대북 억지력 약화에 따른 비용은 결국 한국과 미국 모두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북미 간 줄다리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한은 비핵화 요구를 내려놓으라는 입장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성사하기 위해 추가적인 유화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안보와 직결된 사안이 북미 대화를 위한 협상 카드가 돼서는 안 된다. 특히 한미연합훈련이나 대북 억지력처럼 한국의 안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논의할 때는 한국 정부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북미 대화가 다시 시작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한국이 소외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yu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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